[시니어 좌충우돌 여행기] 하늘이 숨겨놓은 터...'경종의 의릉'을 찾아서

박경희 여행작가
  • 입력 2023.05.2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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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좌충우돌 여행기는 '노원50+ 여행작가교실' 시니어 여행작가들의 작품을 연재한다.

[여행작가 박경희] 4월 중순 여리디여린 초록빛 꽃처럼 고운 잎사귀로 눈이 호강하는 때, 봄을 시샘하는 바람과 가랑비가 '내 마음의 안식처 서울 역사여행과 여행작가 되기‘반의 첫 번째 ‘의릉’ 현장답사를 시작한 우리를 맞이하였다.

의릉이 위치한 천장산은 ‘하늘이 숨겨둔 터’란 뜻을 가진 조선조의 명당자리이다. 이 산은 동대문구 회기동과 청량리동, 석관동을 품는 140m의 나지막한 산이며, 경종과 두 번째 왕비인 ‘선의왕후’ 어 씨의 능(陵)은 그 산자락 아래 자리 잡고 있다.

조선 왕릉은 도성 10리 밖, 100리 이내라는 거리의 기준으로 배치했고, 산을 등지고 앞으로 물이 흐르는 배산임수(背山臨水)를 중요시한다. 한반도 왕실 무덤 건축양식의 완성인 조선왕릉 40기는 자랑스럽게도 2009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의릉 입구에는 유네스코 권고 사항인 ‘체계적인 정보제공 및 안내’를 이행하기 위하여 문화 및 집회시설을 짓고 있으며, 2023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공사 중이다. 이 전시관이 완공되면 의릉은 더욱 다채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의릉 정자각. 촬영=박경희
의릉 정자각. 촬영=박경희

비바람이 부는 날씨가 주는 느낌도 있겠지만, 이곳은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곳이란 것을 일깨워 주듯이 왕의 묘역은 신비한 기운을 가득 담고 있다.

조선의 왕릉은 대부분 속세와 영계를 가르는 금천교를 지나면 홍살문이 있는 구조다. 그런 까닭으로 기둥은 붉은색으로 칠했으며, 상부에 설치한 화살 모양의 나무 살은 마치 사천왕의 거대한 칼처럼 나의 옷깃을 더욱 여미게 한다.

‘붉은색은 악귀를 물리치고, 화살은 나쁜 액운을 막는다’

홍살문 앞에 서면 오른쪽에 전돌을 깔아놓은 곳이 있는데, 이곳은 ‘능’을 찾은 임금이 선왕에게 4번 절하는 곳으로 ‘관위’ 혹은 ‘배위’라고 부른다. '참도'는 혼령이 다니는 길로서 조금 높고, 임금이 다니는 '어도'는 약게 낮게 배치되어 있다. 강사님께서 가고 싶은 길로 가라고 하셨는데 나는 ‘어도’로 걸었다.

조선조 왕릉은 정자각 동쪽으로는 두 개의 계단이 있는데, 왼쪽은 신령이 오르는 '신계'이고 오른쪽은 임금과 제관이 오르는 '어계'이다. ‘신계’의 계단은 화려하고, ‘어계’는 소박한 느낌을 준다.

정자각 뒤에는 산 자와 죽은 자가 능침으로 돌아가기 위해 꼭 건너야 하는 ‘신로’라고 불리는 길이 또 있다. 조선 왕릉 능원은 삼단계로 구분되어 초계 좌우에는 망주석이 있고, 가운데 혼유석이 있다. 중계에는 문인석과 석마가 있고, 하계에도 무인석과 석마가 위치하여 능원을 지키고 있다.

봉분을 감싸고 있는 담과 같은 곡장은 경종왕릉 주변에만 둘러쳐져 있다. 능 주변의 석마, 문인석과 무인석이 든든하게 봉분을 지켜주는 것 같은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나라 능원에 많이 있는 소나무는 가장 고귀한 황제를 위한 나무라고 한다. 또한, 소나무에는 '칼로 타닌'이라는 천연제초제를 뿜어 주변에 잡초가 자라지 못하게 한다.

솔숲 사이 선의왕후의 묘역. 촬영=박경희
솔숲 사이 선의왕후의 묘역. 촬영=박경희

의릉 안내판에 의하면 서울 의릉은 조선의 제20대 왕 경종과 경종의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 어 씨의 능이다. 경종은 숙종의 맏아들로 세 살에 왕세자가 되었고, 숙종의 말년에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국정을 살폈으며, 33세 되던 해 왕위에 올랐다.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한 경종은, 이듬해에 곧바로 이복동생인 연잉군(후의 영조)을 후계자로 정하였고, 즉위한 지 불과 4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인 장희빈은 사약을 받아 숨졌으며, 노론과 소론이 치열하게 대립하는 정치적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있었던 비운의 왕이기도 하다.

선의왕후는 문신 어유구의 딸이다. 숙종 44년(1718) 경종의 첫 번째 부인인 심 씨(후의 단의왕후)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같은 해 세자빈에 책봉되었다. 경종이 왕위에 오른 뒤 왕비가 되었고, 경종이 죽고 6년 후 2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동원상하릉. 촬영=박경희
동원상하릉. 촬영=박경희

의릉은 왕과 왕비의 능을 한 언덕에 위아래로 배치한 동원상하릉의 형태로, 경종의 능이 위에 있고 선의왕후의 능이 아래에 있다. 왕과 왕비의 능을 같은 언덕에 조성할 때는 옆으로 나란히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의릉의 경우는 능의 위치한 구역의 폭이 좁기 때문에, 두 능을 위아래로 두어 좋은 기운이 흐르는 맥이 벗어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정자각 지붕에는 건물을 수호하는 ‘잡상’을 세워놓아 화재를 예방하고 안정을 기하는 주술적인 의미로 만들어져 있으며, 새의 분비물로부터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철조망을 쳐 놓은 '부시'를 설치하여 구조물을 보호하고 있다. 지붕에 올라앉은 ‘잡상’들이 건물을 잘 지켜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마음이 든든해진다.

의릉 비각. 촬영=박경희
의릉 비각. 촬영=박경희

의릉 전각 연꽃무늬의 아름다운 문살을 보고 정자각 천장을 감상한 후 우리는 ‘비각’과 ‘의릉’으로 발길을 옮겼다.

정자각 옆면에 비각이 자리 잡고 있고 비문에는 1724년 경종이 세상을 떠난 후 세웠던 표석에, 1730년 선의왕후가 세상을 떠난 후 최종적으로 새긴 표석이라고 표기되어 있다.경종은 일찍 세자로 책봉되었음에도 숙종이 46년간 재위를 마치고 승하한 후 1720년 6월 13일 즉위하였다. 4년의 집정기간에도 허약한 건강 상태 탓에 어전회의에 빠지는 날이 많았다. 이 틈을 비집고 들어와 노론은 세제를 세우라 요구하였으며, 자신의 건강 상태를 잘 아는 경종은 동생인 연잉군의 ‘대리청정’을 따랐던 왕이다. 이런 당쟁의 혼돈을 겪으면서도 평화를 사랑했던 왕은 훗날 탕평책을 내세워 당파싸움을 없애려 노력했고, 동생 영조대왕을 탄생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경조의 생애를 생각하면서 경건한 맘으로 왕릉 주변을 걸었다.

왕릉 뒤편에는 천장산으로 가는 산책로가 펼쳐지지만, 지금은 산림 보호 기간으로 입산이 통제되어 갈 수 없었다. 하지만 경내 주변 산자락은 걸을 수 있게 해 놓아 섭섭한 마음을 달래주었다. 포근포근한 숲길과 빗물을 머금은 나무에서 짙은 솔 향기가 코를 찔렀고 어여쁜 꽃나무가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구, 중앙정보부 건물. 촬영=박경희
구, 중앙정보부 건물. 촬영=박경희

경종과 선의왕후가 잠든 의릉은 군부 세력에 의해 훼손된 대표적인 왕릉이다.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장악한 군부는 정보정치의 산실인 중앙정보부를 의릉 경내에 건축했고 정자각 앞에 연못을 파고 장미 등 외래수종 꽃나무를 심어 왕릉을 훼손하였다. 역사의 아픈 흔적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경내 겹벚나무. 촬영=박경희
경내 겹벚나무. 촬영=박경희

경내 참배를 다 마치고 돌아 나온 길목에는 겹벚나무가 비운에 살다 간 왕과 왕후를 위로하는 듯 가지마다 휘어지게 꽃망울을 매달고 봄을 희롱하는 듯하였다.

청매가 봄을 시샘하는 거센 바람 속에서도 어릿어릿하게 흩날리는 날, 의릉을 참배하고 만감이 교차한다. 짧은 재위 기간이었지만 만인의 기본이 되어야 하는 ‘효’와, 비록 이복동생이었지만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주며 ‘형제애’를 지켜냈던 경종에 대해 생각하였다.

조선조의 ‘효’는 모든 이들이 필수적으로 지켜야 하는 피와 살과 같은 규범이었다. ‘형제애’ 또한 모두가 지켜야 할 덕목이지만 역시 지키기가 쉽지 않다. 가까운 형제에게는 자칫하다 보면 타인에게 하지 않던 행동도 ‘이 정도는 봐주겠지’ 하는 생각에 쉽사리 하여 상처를 주기도 한다. 가까운 사이에서도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상대방이 하는 말과 행동을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관과 틀을 거쳐 변형하여 자기화하여 해석한다. 그래서 본질이 왜곡되어 오해를 사게 되는 것이다.

의릉 앞 할미꽃. 촬영=박경희
의릉 앞 할미꽃. 촬영=박경희

왕릉 앞에는 ‘공경, 충성, 슬픈 기억’의 꽃말을 가진 할미꽃이 지천이다. 요즘 참 보기 드문 꽃인데, 애정을 가득 담아 바라보았다. 누가 심었을까? 저 무덤과 인연이 있는 사람일까, 문득 그 인연이 보고 싶다.

서울 50+ 노원센터 내 '서울 역사기행과 여행 작가 되기' 반의 첫 번째 수업 후 인문 기행을 쓰려니 역사에 관해 찾아보면서, 집중하여 글쓰기에 몰입한 귀한 시간이었다. 강의 내내 하나라도 열심히 알려주시려는 강사님과 서로서로 배려하는 다정한 우리 반의 다음 기행을 설레는 맘으로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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