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事] 가을이 오고 있다. '인연이란 무엇인가?'

윤재훈 기자
  • 입력 2023.10.27 16:20
  • 수정 2023.11.15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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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낙엽. 촬영=윤재훈 기자
가을 낙엽.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이 세상에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생명체 중에서 부모님을 만나고, 한 어머니 배(腹)에서 형제로 태어나고, 부부로 만나고, 자식으로 만나고, 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인연인가?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정현종 시 ‘방문객’

그런데 우리는 그 관계를 얼마나 귀히 여기는가? 재산 때문에 싸우고, 상대방 탓만 하다가 이혼하고, 한 번쯤이라도 그 귀한 인연을 솔바람 소리 흐르는 숲속에 앉아서,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친구로 만나고, 이웃으로 만나고, 우리는 얼마나 흉금을 털어놓고 진심으로 만나는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한다. 
3천년 만에 한 번 이 지상에 내려오는 선녀가 커다란 바위 위에 옷깃을 스치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데, 그 바위가 닳아 없어지는 시간이 한 번의 인연이라고 한다. 우리는 그런 인연이 있을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 나는 얼마나 귀히 여기고 있는가, 한 번뿐인 이 인간사에서, ‘당신은 나의 거울’입니다. 그 거울 앞에 무릎을 꿇고 공손히 인사를 하면, 상대도 나에게 똑같이 인사를 한다. '인간관계는 반영이다.'

다시 인연을 생각해 본다. 

소슬하게 찬바람이 일기 시작하는 가을로 들어가는 문턱, 귀한 인연들을 잠시나마 만나보고 싶은 시간이다. 나를 이 지상에 있게 해준 참, 고마운 분들이다. 

이웃을 생각해본다. 
만약 그 가족이 굶고 있으면 가장 먼저 우리 집 담을 넘어올 수 있다. 그 이웃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할 수 있다. 

햇볕이 들어온다
반지하, 단칸 셋방 

아침나절, 한 줄금
건물 사이를 비집고

구석으로 겨우 들어온 햇볕에
지나가던 돈벌레도
산보 나오던 바퀴벌레도 움찔하며
햇빛을 피하는데,

119가 왔다
풍화된 백골이 탈골되어 가더란다
빨간 불이 저승처럼 운다

-‘단칸 셋방’, 윤재훈

나는 이 사회의 불합리 한 점만 탓하기 이전에, 과연 무슨 보탬이 될 수 있을까? 가을은 생각이 많아지는 계절인가 보다. 

국가란 또 무엇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세상은 온통 고마운 것투성이다. 저 햇볕이, 공기가 있어, 네가 생명을 유지할 수가 있고, 자연만물이 베풀어 주고 있어, 네가 이 세상에 살 수 있는 것이다. 

향그런 가을 바람이 불어온다. 신발 가게 아저씨가 있어, 네가 신발을 신을 수가 있고, 식당이 있어 네가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다. 네가 돈을 낸다고 해도 그것은 온전한 나의 공(功)만은 아니다. 

앰블런스 소리가 나면
그 자리에 서서
기도를 한다

이 밝은 날 아침에 
누구가 아무 이상이 없기를
어린이 마음으로 
기도를 한다

윤리가 돈으로 환치되는 무서운 세상  
기형적인 부모들이
너무나 기형적으로 아이들을 기르고  
사이코 같은 어른들이 수시로 양산되는
수상한 시절  
극도의 패거리로,    
숙성되지 못한 사람들 고성만 난무하는  
하, 수상한 시절

다시 눈과 입이 오염되려 하면  
그 자리에 서서 기도를 한다
그대 편안하기를, 아무 일 없기를  
어느 무인도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된 것처럼
다시 고요해지기를 

저 붉은 앰블러스 소리가 멈추고
다시 세상이 안온해지기를 

- ‘기도를 한다 ’, 윤재훈

신채호 선생님은 ”국가가 없는 민족에게는 인권도 없다“고 하셨다. 백번 옳은 말일 것이다. 우리가 일제 시대에 일본인들에게 총개머리판으로 머리가 깨지고, 개돼지  취급을 받았던 것도 국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유태인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찾아 유랑한 것도, 지금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들이 저 핍박을 받고 제 목숨을 지키지 못한 채 수천 년 광야를 헤매는 것도, 다 지켜줄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네가 하는 일들이 이 사회에 조금이라도 선한 영향력을 미쳤으면 좋겠다. 가을이 깊어져 간다. 붉은 저 단풍잎의 속 빛깔처럼 그렇게 숙성되어 가면 좋겠다. 이 계절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이웃을 더욱 따뜻한 눈길로 지켜볼 수 있는 그런 가을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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