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행이다 ㉑] 산악인의 로망, 지리산 ‘화대(華大) 종주’를 꿈꾸며 4, 반야봉 안개 속에

윤재훈 기자
  • 입력 2023.06.21 17:23
  • 수정 2023.06.2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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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고 나면 변비가 생긴다

, 헤아릴 수 없는 태양과 바람을 맞으며,

농부의 숱한 수고로움 속에서 자라난

곡식을 먹었는데,

내 뱃속에서는 돌이 되어 나오는가

도대체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길래

한 번 들어간 것들은

순하게 나오지 못하고

살을 찢으며, 선홍빛 피를 내는가

- ‘변비’, 윤재훈

반야봉을 오르며. 촬영=윤재훈 기자
반야봉을 오르며.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노고단에서 반야봉으로 가는 길은 돼지령과 임걸령을 지나지만 작은 산봉우리들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하지만 전날 11시에 동서울터미널에서 출발하여 새벽 3시에 성삼재에 도착하고, 바로 출발하여 노고단 산장에서 누룽지 한 그릇 먹고 출발했으니 몰려오는 허기를 어찌할 수 없다.

산행을 오기 전 한 이틀 탁구를 좀 무리해서 쳤더니 다리에 알까지 뱄다. 뉘엿뉘엿한 발걸음으로 오르락내리락한다. 할 수 없이 배낭을 뒤져 비상용으로 넣어왔던 초콜릿과 에너지바를 먹었더니 아까부터 뱃속에서 가스가 차며 부글거린다.

참 이상한 일이다. 나는 5년 동안 세계여행을 하면서 온 나라 음식을 먹었지만, 한 번도 배탈이 난 적이 없었다. 딱 한 번 있었다면 그것은 인도에서였다. 카레의 나라, 세계적으로 음식물 환경이 불결한 나라,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을 들라면, 바라나시에서였을까, 콜카타 여행쯤에서였을까? 역으로 들어가는 육교 위 빽빽하게 사람들이 지나가는데, 그 중간쯤에 아주머니가 아이를 옆에 뉘어놓고 구걸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닥에는 비닐을 깔고, 그 위에 밥 한 줌 놓은 채 맨손으로 먹고 있었다. 사람들 발아래에서는 자욱하게 먼지가 일고 있었다.

갑자기 ‘인간이라는 게, 먹는다는 게’ 잠시 환멸이 느껴졌다. ‘먹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 먼지 속에서도 인간은 먹어야 하는 동물임은 분명할 텐데, 그 나라의 위정자들에게 느끼는 환멸이었을까?

세계여행을 처음 시작할 무렵. 대안학교 아이들을 데리고 1년 동안 인도, 네팔, 동남아 국가들을 다니는 ‘움직이는 학교’에 인솔하기위해 현지답사 때문에 갔다. 마침 휴영제라고 활동하고 있던 단체에서 인도 여행을 간다기에 따라갔다. 구성원들은 주로 신부님과 목사님 들이었다. 다들 명망이 있는 사람들이라 고급 호텔에서 주로 잤다. 음식은 항상 기름에 튀긴 종류였다. 보름 정도 되는 날, 마침내 그것들이 쌓여 배탈이 났다. 여행을 다니기가 곤란했다. 일행들과 관광 중이었지만 할 수 없이 빠져나와 가이드와 함께 병원에까지 갔다.

반야봉에서 본 운해. 촬영=윤재훈 기자
반야봉에서 본 운해. 촬영=윤재훈 기자

여하튼 그 후로 5년 동안 세계여행을 다녔지만, 단 한 번도 배탈이 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작년 6월부터 막걸리만 마셨다 하면 가스가 차고 설사가 나왔다.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짐작 가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매일 하루에 막걸리 한 병 이상씩을 마신 것뿐이었다.

막걸리는 참 좋은 술이었다. 젊은 날 꿈꾸던 것들은 이루어질 기미가 안 보이고, 경제적으로 어렵게 지내던 시절. 주위에 마땅한 친구도 없던 그 시절에 막걸리는 나에게 친근한 벗이었다. 순간순간 시름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온종일 도서관에 앉아 있다가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들고 나가, 슈퍼에서 막걸리 한 병과 쌀 튀밥 과자 한 개를 사 와서 같이 먹으면 좋았다. 반병쯤 들어갈 때까지 얼큰하게 취해오는 그 기분은, 평상시에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기분 좋은 아름다움이었다. 아마도 마약 중독자들도 이런 기분에 먹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것을 중독이라고 해야하나? 애주가라고 해야 하나?

참새는 가지를 다투다가
떨어지고
나는 벌레도 정원에
가득히 노닐고 있네
막걸리야
너를 누가 만들었더냐
한잔으로 천 가지 근심을
잊어버리네
- ‘막걸리’ 천상병

며칠씩 참다가 그 맛있는 막걸리를 다시 몇 번인가 마셔 보았지만, 입에만 대었다 하면 배에 가스가 차고 설사가 나왔다. 그래도 술에 대한 그 유혹을 버릴 수가 없어서 주종을 바꾸면 괜찮을까 하고 소주나 맥주를 마셔봐도 똑같았다.

튀긴 음식을 조금만 입에 대어도 바로 설사가 나오고, 커피마저 그랬다. 할 수 없이 참을 수밖에 없었다. 몇 달 동안 술이 없는 시간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 같았다. 점점 그 시간이 오래 지속되자 약간의 걱정도 일었다. 주위에서는 내시경을 받아보라고 했다. 나는 평생 한 번도 내시경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주위에 보니 내시경은 보험이 된다고 하여 사람들은 의무적으로 받고 있었다.

돼지령을 지나며. 촬영=윤재훈 기자
돼지령을 지나며. 촬영=윤재훈 기자

 

의료천국의 나라, 의사들의 나라, 간호사의 처우는 개선되지 않고,
신입 간호사들은 한두 시간 먼저 출근하고 한두 시간 늦게 퇴근하며,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나라,
태음 때문에 간호사가 죽어가도 모른 척하는 나라.
병원장이 시키면 간호조무사도 수술하고 간호사가 옆에서 보조하는 대리수술도 통용되는 나라.

그래도 병원장은 떳떳한 나라.
의료사고를 일으켜 사람을 죽여도 잘못이 없다고 강변하면 되고, 
여차하면 다른 지역으로 가서 다시 개원하면 되는 나라.
심지어 산부인과에서는 마취에 취해있는 여자에게 못된 짓거리를 해도,
절대로 수술실에는 CCTV를 달지 않겠다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의사,
그것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국회의원들과 거래하는 나라.

의사가 없어, 수도권을 벗어나면 의사가 없어 난리가 나고,
소아청소년과가 부족해 아이들이 병원을 찾아 헤매다 죽어도,
의사 수는 절대 늘리면 안 된다고 수십 년째 데모하며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삼은 나쁜 의사들.

그런 인간이 되겠다고 강남에 가면 초등학교 아이들부터
의대 지망 학원이 넘쳐나는 나라.

"의료 권하는 나라, 항생제 천국의 나라," 병원에 가면 의사는 무조건 수술하라고 하고, 위장내시경을, 대장내시경을 받으라 한다. 그러면서 일 년에 한 번, 이 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받아야 한다고 겁을 준다.

산첩첩 물골골 지리산. 촬영=윤재훈
산첩첩 물골골 지리산. 촬영=윤재훈

심지어 회사에서 해준다고 위장 내시경은 일 년에 한 번, 대장내시경은 이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받는 사람들까지 있다.

나도 할 수 없이 두 가지 내시경을 받았다. 다행히 별다른 이상은 없고 대장내시경을 하면서 작은 용종 하나를 떼어 내었다고 하면서, 내년에 또 하자고 한다. 부정맥이 있다고 평생 약을 먹으라고 하는데, 어떻게 평생 약을 먹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노인들 집에 가면 약이 한 아름이다. 자기 가족에게는 그렇게 안 할 것이다. 물론 본인도 먹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개중에 의사들은 나이를 먹으면 건강센터를 만들어, '약도 먹지 말고 수술,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도 하지 말고', 음식과 자연 요법으로 치료하라는 의사들이 인터넷을 찾아보면 한두 명이 아니다. 그런데 젊은 날에는 왜 그렇게 수술과 약을 처방해 주었을까?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의사들이 제대로 잘 모르면 그렇게 붙인다고 한다. 하긴 21세기 의료가 눈부신 발달을 하였다고 하지만, 그것 역시 우주에서 볼 때 미세한 한 영역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오래전 TV에서 본 방송이 생각난다. 내시경 청소가 제대로 되지 않아 오히려 병원에서 병을 얻어 온다고. 하긴 동네 의원도 한 달 이상 기다려야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내시경 환자가 밀려있으니, 매일 그런 검사가 진행되고 있으니 말이다.

철저하게 가려져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창자에 구멍이 나는 천공의 위험성도 많아, 나이를 먹으면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창자에 구멍이 나고 음식물이 밖으로 튀어 나가면 상상만 해도 무섭다. 간간이 내시경 때문에 마취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고 죽는 사람까지 생겨나지 않는가.

노루목 가는 길. 촬영=윤재훈 기자
노루목 가는 길. 촬영=윤재훈 기자

술을 마시면 몸에서 괴로우니 자연히 멀어지게 된다.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하다. 정말 끓기가 힘들 텐데, 몸이 괴로우니 마실 수가 없다.

담배도 그랬었다. 이십여 년이 넘도록 한 갑 이상 피웠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것도 40대 초반 어느 날이었을까, 비염이 찾아왔다. 맑은 콧물이 약간 켜 놓은 수도꼭지처럼 쏟아져 나왔다. 하루 종일 머리가 흔들릴 정도로 재채기까지 나왔다. 이비인후과에 매일 다니며 주사를 맞고 약을 먹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약은 사람을 무기력하고 잠만 자게 했으며, 주사는 더 엉덩이에 꽂을 데가 없을 정도로 맞았다. 너무 많이 맞고 제대로 문질러 주지 않아 엉덩이까지 알밴 것처럼 아팠다.

담배를 입에 대기만 하면 더욱 심해져 필 수가 없었다. 누군가 산의 맑은 공기가 최고라 하여, 그때부터 산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것이 선지식(善知識)이 아닐까.  몸에 좋지도 않은 것을, 내가 도저히 끓지 못하니까, 저절로 이렇게 끊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결국, 그렇게 해서 그 어려운 담배를 끊었다. 한편으로는 좋기도 했다. 실은 백해무익한 담배를 끊으려고 몇 번 시도해 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술이었다. 사실 나는 담배는 끊고 싶었지만, 술을 끓을 생각은 없었다. 술은 좋은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이태백이 그랬던가? 술을 마시려면 주선(酒仙)처럼 마셔야 한다고.

그것은 애주가(愛酒家)라는 말과도 상통될 것이다.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기분이 좋아지고 우정이 돈독해진다. 처음 본 사람과도 금방 어깨동무할 수 있으며, 그때부터는 바로 친구로 만들어 주는 깊은 마력이 있다. 아무리 화가 나 있어도 몇 잔 마시고 나면 저절로 풀어지기도 하는 선약(仙藥)이 되기도 한다. 삭막한 남자 사이에 이렇게 고마운 윤활유 역할을 해주는 친구가 또 있을까. 그런데 몸이 괴로워지니 어쩔 수가 없었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것도 선지식(善知識)이라 생각할 수밖에“

그리고 1년이 지나가니 이제 점점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

반야봉 철쭉. 촬영=윤재훈 기자
반야봉 철쭉. 촬영=윤재훈 기자

노루목을 지나 약간 경사진 길을 올라 연한 철쭉이 흐드러진 반야봉 삼거리쯤에서 땀을 식히며 잠깐 쉬었다. 하늘에는 구름이 떠가고 새들의 울음소리는 더욱 맑았다. 노래 한 소절이 저절로 흘러나온다.

하늘엔 한 점의 구름이 떠가고
철둑길 건너 산을 넘는 들길엔
머언 기적 소리만 홀로 외로워도
나는 이 자리를 떠나지 않으리

누구를 기다리나 무엇을 바라는가
누구를 기다리나 무엇을 바라는가
모든 것 끝난 뒤
- ‘모든 것 끝난 뒤’, 이수만

뱃속에 가스가 부글거리고 더는 견딜 수가 없어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 높은 곳에 아이들 손톱만 한 파리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1,700m가 넘어가는 이 고지에서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것은 남자들이 가다가 일을 많이 봐서 그런 것이 아닐까, 잠깐 우스개 생각을 해보았다.

그나 저자 남자들은 참 유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인네는 이 난감한 순간을 어떻게 해결할까? 하는 생각이 밀려오는데, 새들이 나무 사이를 경쾌하며 울면서 간다. “괜한 걱정 하지 말라고, 오늘 내가 본 것만 해도 수십 건이라“, 웃고 가는 것 같다.

밥을 먹고 나면 변비가 생긴다
왜, 헤아릴 수 없는 태양과 바람을 맞으며,
농부의 숱한 수고로움 속에서 자라난 곡식을 먹었는데,
내 뱃속에서는 돌이 되어 나오는가
도대체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길래
한 번 들어간 것들은
순하게 나오지 못하고
살을 찢으며, 선홍빛 피를 내는가

화장실에 앉아 신음을 하면서
한 줄기 빛도 없는 어두움 속에서
흔들리고 있는 나를 보았다
이 땅에 수고로운 곡식들이
내 안으로 들어가면
왜, 이렇게 딱딱하게 굳어져 나오는지,
미풍(美風) 진 세상을 어떻게 살았으면
그 부드러운 살 속에서, 돌멩이를 만들어 내는지

내 옆에서 배냇똥을 누고 있는 아이
송아지도 맨 처음 싼 똥은 사람을 살리는
우황(牛黃)을 만들어 낸다는데
나는 왜 부드러운 내장 속에서
그다지도 딱딱한 돌멩이를 만들어
오늘 아침도 괴로워하는가

- ‘변비’, 윤재훈

허기 아래에는 교수님도 라면 봉지에라도 먹어야 산다. 촬영=윤재훈
허기 아래에는 교수님도 라면 봉지에라도 먹어야 산다. 촬영=윤재훈

먼저 온 일행들은 라면을 끓이고 있다. 그런데 수저와 젓가락은 물론 덜어 먹을 그릇도 준비해 오지 않았으니 참 난감하다. 어떻게 임시방편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밥을 먹을 때마다 불편하다. 장기 산행에서는 작은 그릇이 한 개 꼭 필요하다. 오랜만에 산행을 오니 적응력이 많이 떨어졌나 보다.

모두 누룽지 한 그릇 먹고 오전 내 걸었으니 무척이나 배가 고픈 모양이다. 라면이 익은 듯 부풀어오자 옆에 사람 볼 것 없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정신없이 먹어댄다. 우선 비어있는 뱃속에 채워 넣는 듯하다. 산 아래에서는 점잖은 노년의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김치까지 곁들어 국물까지 따라 허겁지겁 마신다.

푸른 나무 그늘 아래 시원한 바람, 산새들은 저마다의 소리로 울면서 지나가는데, 후루룩, 후룩룩, 라면 먹는 소리와 합쳐져 묘한 화음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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