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행이다㉔] 지리산 ‘화대(華大) 종주’를 꿈꾸며7. 숲속을 꿈결처럼 흐르는 개울들, 연하천(烟霞泉) 산장

윤재훈 기자
  • 입력 2023.07.27 11:15
  • 수정 2023.12.10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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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이 제 역할을 못 해
대안학교가 다시 필요한, 어른들이,
이 사회가, 개탄스럽다.

“새 새끼처럼 산에 깃들면 점차, 산을 닮아간다.” 촬영=윤재훈 기자
“새 새끼처럼 산에 깃들면 점차, 산을 닮아간다.”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연하천 산장의 지형은 좀 특이한 것 같다. 해발(海拔) 1,586m의 명선봉 정상 부근의 높은 곳인데도 물이 풍부하다. 며칠 비라도 뿌리면 산장 부근이 마치 늪지대처럼 질퍽거린다. 하지만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벽소령 휴게소가 있다. 그곳은 마사토가 많은 지역이어서 비가 와도 금세 스며든다.

옛날에는 이곳에 ‘신선’이라는 산장지기가 살며 주변 환경을 보존하려고 노력하였다. 지금은 모두 공공에서 관리하고 있다.

숲속을 누비며 흐르는 개울물이 구름 속을 흐르는 것처럼 꿈결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연하천(烟霞泉) 산장’. 수십 년 만에 노을 무렵의 산장에 도착하고 보니,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 아마도 지리산 마루금에서 붐비는 곳 중의 하나이다. 코로나 이후라 그럴까? 하지만 산행 중에 만났던 강진에선가 온 대안학교 아이들이, 세석평전에선가 출발하여 오늘 밤 이곳으로 온다고 했으니, 서둘러야 할 것 같다.

대안학교 아이가 젓가락을 씻고 있다. 촬영=윤재훈 기자
대안학교 아이가 젓가락을 씻고 있다. 촬영=윤재훈 기자

따로 물을 받을만한 곳도 없다. 입구로 흐르는 계곡물로 대충 세면을 하고, 밥물도 받았다. 마당에는 식탁이 잘 준비되어 있다. 산장에서 햇반만 사면 된다. 과거에는 여러 가지 음식들을 팔았는데 지금은 단출하여 직원들이 더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사람이 오다 보니 음식이 그런대로 넉넉하다. 그럴 때는 잘 분담해서 1인당 2인분 정도 음식을 나누어지고 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해외여행도 그렇지만 산행 역시 짐을 쌀 때, 많은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한반도에서 제일 높은 이 산중에서 돼지고기, 오리 불고기 굽는 냄새가 나다니, 종일 허기진 뱃속에서 단침이 저절로 흘러나온다. 라면에 김치를 싸서 허겁지겁 집어넣는다. 지금 생각해도 다시 군침이 돈다.

꼭, 오시려거든, 산의 마음으로 오시라. 촬영=윤재훈 기자
꼭, 오시려거든, 산의 마음으로 오시라. 촬영=윤재훈 기자

대안학교 아이들이 단체로 들어와서 주위가 소란하다. 샘가도 한군데뿐이라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그 많은 아이가 볼 때마다 인사를 하여 약간 낯설다. MZ 세대라고 했던가, 한세상을 살면서도 이렇게 낯설게 세대 간에 차이가 나다니, 초고속 통신 문명이 인류를 이렇게 몰고 간 것일까?

과거에는 아이들이 어른들을 만나면 인사하는 것이 당연했다. 마을 입구에서 낯선 어른들을 만나도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 아름답던 미풍들이 점차 사라져 가는 풍경이나 되지 않을까, 두렵다. 동물들은 서로 만나면 경계부터 하고 싸우고 잡아먹는다.

뉴스에서는 길가에서 일면식도 없는 노약자들을 폭행하고 가는 CCTV 화면들이 심심치 않게 나와, 경악을 금치 못한다. 어떻게 도와드리지는 못할망정, 노인들에게 저런 만행을 저지를 수가 있을까?

공교육이 제 역할을 못 하고 특히나 자기 아이만을 더 챙겨 달라는 부모, ‘우리가 누군데’, 하고 선생님들을 겁주는 부모, 끝없이 고발하며 선생님의 학습권을 침해하고 괴롭히는 부모. 정말 이 사회에서 사라져야 하는 그런 악습들이다.

공교육이 제 역할을 못 해, 대안학교가 다시 필요한, 어른들이, 이 사회가 개탄스럽다.

지리산의 마루금들. 촬영=윤재훈 기자
지리산의 마루금들. 촬영=윤재훈 기자

요즘 간간이 다른 사람을 끝까지 도와주거나, 음주 운전 차량을 끝까지 추적하여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의인들이 TV에 나올 때가 있어, 참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자신들 기분 좋아서 먹은 귀한 음식으로 만든 술.

‘술잔을 들면 운전대를 놓아야 할 것이다. 그럴 용기가 없으면, 술잔을 높이 들지 말아야 할 것이다.’

멀쩡한 가정을 파괴하는 가정파괴범들 아닌가. 그 집에는 마른하늘에 이 무슨 날벼락인가. 그런데 죄가 너무 가볍다. 사람을 해하고도 돈이 많아 합의만 하면, 집행유예로 나온다. 심심치 않게 음주 운전을 하는 국회의원들이나 법을 다루는 기술자들은, 음주 운전을 무겁게 다루는 법들을 절대로 통과시키지 않고 있다.

세상에 무슨 이런 법이 있고, 돈에 굽신거리는 파렴치한들인가? 농부들이 고생하여 생산한 귀한 음식으로 만든 술을 마시고, 자신들의 기분이 좋아졌으면, 주위에도 선한 영향력을 미쳐야 할 것 아닌가.

그런 사고들을 미연에 막아주는 의인들을 보면, 한없이 고마움을 느낀다. 단비 같은 사람들이다.

대안학교 아이들을 보면 선생님이 존경스럽다. 촬영=윤재훈 기자
대안학교 아이들을 보면 선생님이 존경스럽다. 촬영=윤재훈 기자

여기에 요즘에는 ‘공탁제도’라는 낯선 기술이 등장하여 일부 변호사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되고, 피해자들만 더욱 외진 곳으로 몰리고, 생활마저 파탄이 난다고 한다.

용서해도 피해자가 용서(?)해야지. 왜, 파렴치(破廉恥)한 놈을, ‘돈과 판사’가 용서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산에서도 휴대폰을 놓지 못하는 마음. 촬영=윤재훈 기자
산에서도 휴대폰을 놓지 못하는 마음. 촬영=윤재훈 기자

오늘 밤은 오랜만에 코로나 사태로 제대로 보지 못했던 별들을 실컷 볼 수 있을 것 같다. 푸른 신록의 내음이 다시 밀려온다. 나른한 몸을 눕히기에 절로 없이 좋은 풍경이다. 한잔 술에 취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산새 소리와 섞여 퍼진다.

이곳에서 20여 분 거리에는 연하천의 발원지인 명선봉(1,586m)이 있다. 그곳에 올라서면 멀리 대성리 의신마을과 삼정마을이 계곡 안에 묻히듯 내려다보일 것이다. 그 옆으로는 토끼봉(1,534m)이 있는데, 우리가 오늘 올라갔다 온 반야봉에서 보면 그 방위가 묘향(卯向)이라, 묘봉으로 불리다가 토끼봉으로 바뀌었다.

우리 민족사의 비극인 여순사건 때는 지리산으로 숨어들 수밖에 없던 주민들이 난데없는 빨치산으로 몰렸다. 그리고 무자비하게 학살당했다. 그분들이 봉우리에 꽃이 만발한 모습을 보고 고향마을 뒷산이라도 떠올렸는지, 꽃대봉이라 부르며 외로움과 공포를 달랬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아버지도 그중에 한 명이었다는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었다. 그분들의 생명에 대해 이 조국이 해준 것은 무엇이 있을까?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그대, 빈 마음으로 오시라.” 촬영=윤재훈 기자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그대, 빈 마음으로 오시라.” 촬영=윤재훈 기자 

일행 중 한 사람이 신발이 오래되었는지 바닥이 떨어졌다. 앞으로 일정이 이틀이나 더 남았는데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세상에나, 연하천 대피소에서는 신발까지 빌려준다고 한다. 참으로 다행이다. 신발을 빌려주다니!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다.

산은 어둠이 빨리 찾아온다. 더구나 이런 큰 산에서는 더 말해 무엇하랴. 사람 사이에는 하룻밤이라도 같이 자고 나면 그 사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잠깐 스쳐 지나가면 보지 못했던 그 사람의 버릇이나 습관까지도, 그래서 가끔은 난감할 때도 있지만 말이다.

지리산의 아침. 촬영=윤재훈 기자
지리산의 아침. 촬영=윤재훈 기자

누룽지탕으로 아침을 먹고 이제 형제봉으로 향한다. 두 형제처럼 나란히 서 있는 돌기둥을 향해서, 의(義)좋게 갈 것이다. 약간의 옅은 안개가 끼어 있고 여기저기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천국인 듯, 낙원인 듯 들려온다.

얼마쯤이나 갔을까? 지팡이 대가리 부분이 뚝, 하고 부러진다. 어젯밤에 신발을 보충한 사람은 있지만 지팡이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니, 보충할 수가 없으리라. 그냥 걸어가야 하는 수밖에 없으리라. 자연(自然) 속에서는, 
“스스로 그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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