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행이다㉓] 산악인의 로망, 지리산 ‘화대(華大) 종주’를 꿈꾸며6. 50년 동안 거문고를 타던 지리산 동국제일선원, ‘칠불사’

윤재훈 기자
  • 입력 2023.07.24 10:55
  • 수정 2023.07.25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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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꽃 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이원규

지리산 운해. 촬영=윤재훈 기자
지리산 운해.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불가에서는 지리산을 예로부터 문수보살이 일만 권속을 거느리고 상주하는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리산이라는 이름도 문수보살의 이름인 ‘대지문수사리보살(大智文殊師利菩薩)’에서 ‘지(智)’ 자와 ‘리(利)’ 자를 각각 따온 것이라고 한다. 지리산은 상봉인 천왕봉과 주봉인 반야봉으로 연결되는데, 반야봉은 곧 문수보살의 대 지혜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지리산을 문수도량이라고도 하는데, 토끼봉과 명선봉 아래에 있는 칠불사(七佛寺)는 생문수(生文殊) 도량으로서, 이곳에서 참선하거나 기도하면 문수보살이 근기에 맞추어 기도를 성취해 주거나, 견성오도(見性悟道)를 이룰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칠불사는 가야불교의 발상지이며, 동국제일선원이다. 또한 해동계맥을 수입한 율(律) 도량이며, 동다를 증흥한 차도량, 거문고를 전승한 현악의 도량이기도 하다.

동국제일선원, 칠불사. 촬영=윤재훈 기자
동국제일선원, 칠불사. 촬영=윤재훈 기자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의하면 1세기경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은 서기 42년에 화생(化生)하였다. 김수로왕은 남해를 통해 가락국에 온 인도 황하 상류의 태양 왕조인 아유다국 허황옥 공주를 왕비로 맞아 10남 2녀를 두었다. 그중 장남은 왕위를 계승하였고, 둘째와 셋째 왕자는 어머니의 성을 이어받아 김해 허씨(許氏)의 시조가 되었다. 그 나머지 일곱 왕자는 외숙인 범승(梵僧) 장유보옥(長遊寶玉) 화상(和尙)을 따라와 출가하여, 이곳에서 모두 성불했다고 한다. 그것을 기념하여 김수로(金首露) 왕이 국력으로 창건한 사찰이며, 가야불교의 발상지이다.

부모가 그들이 보고 싶어 칠불사를 찾아왔으나 이미 출가하여 볼 수 없다고 하여 정 보고 싶으면 칠불사 경내에 못을 파라고 하였다. 그 영지(影池)에 칠 왕자의 그림자가 나타났다고 한다.

칠불사 영지. 촬영=윤재훈. 촬영=윤재훈 기자
칠불사 영지. 촬영=윤재훈. 촬영=윤재훈 기자

사찰 아래에는 사하촌(寺下村)인 목통마을이 있는데, 칠불암과는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으며, 칠불암 복원 불사 때에는 노력 동원도 마다하지 않았다.

인근에 있는 화개골에 주민들은 이곳을 먹통 밭이라고 부르는데 그 유래는 옛날 이곳에 꿀처럼 달콤한 얼음(식물의 일종)’ 밭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 사투리로 얼음을 먹통이라고 하는데, 행정관서에서 목통이라고 부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전남과 경남을 가로지르는 경계에 있는 하동 목통마을은, 17가구 40여 명이 사는 아직도 조용한 산골 마을이다.

겨울, 지리산. 촬영=윤재훈 기자
겨울, 지리산. 촬영=윤재훈 기자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엔
아랫마을 하동 사람 윗마을 구례 사람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
구경 한 번 와 보세요
보기엔 그냥 시골 장터지만
있어야 할 건 다 있고요
없을 건 없답니다 화개장터

광양에선 삐걱삐걱 나룻배 타고
산청에선 부릉부릉 버스를 타고
사투리 잡담에다 입씨름 흥정이
오손도손 왁자지껄 장을 펼치네
구경 한 번 와 보세요
오시면 모두 모두 이웃사촌
고운 정 미운 정 주고받는
경상도 전라도의 화개장터

- ‘화개장터’, 조영남

이 마을에는 옛날에 물레방아가 있어 물레방아를 이용한 소수력(小水力) 발전을 가동하여 지리산에서 가장 먼저 전기를 썼다. 심지어 하동읍이나 화개장터보다 먼저 써서 주민들의 자부심도 대단했다. 그러다 2002년에 멈추었는데, 이 마을에서 그런대로 부유했던 물레방앗간 산골 총각 김수만 씨와 미모의 여수 처녀의 러브레터는 마을 사람이면 다 알고 있는 흘러간 이야기이다. 현재 이 마을은 소수력 발전 이외에도 풍력발전기, 태양광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여, 국내 1호 ‘탄소 없는 마을’로 지정되었다.

하루 최대 2,700kW에 달하는 전력을 생산하고 있으며, 남은 전력을 한국전력에 되팔아 그 소득을 주민들에게 분배하고 있다고 하니, 명산 지리산 아래 살만한 마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아가,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환경보호에 적극 나서야 하며,

자신과 가족들도 일회용품이나 세제 등을 줄이는 노력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가히 그래야 ‘산에 들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 하지 않겠는가?”

지리산에는 수많은 산간마을이 있지만 친족 마을이 거의 없는데, 이 마을은 모두 친척 마을이라 6.25 이전부터 살아왔지만, 큰 소리 한 번 나는 일이 없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떠나기 전에는 고로쇠 수액이나 재취하고, 한봉으로 부촌이라는 말도 들었다고 한다.

칠불사 약숫물. 촬영=윤재훈 기자
칠불사 약숫물. 촬영=윤재훈 기자

뱀사골은 산악인들 사이에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반대편인 화개재에서 목통까지의 산길은 뱀사골길 못지않게 잘 다져져 있고, 스님소와 같은 경관이 빼어난 곳이 많다. 목통계곡이라고 불리는 이 골짜기는 지리산에서 가장 깨끗하면서도 아기자기한 계곡미를 자랑한다.

토끼봉에서 칠불암으로 내려오는 길에는 샘터가 두 군데가 있다. 아래쪽 샘터를 스님들이 먹는 상수원을 보호하기 위해 칠불암에서 약간 길을 돌려놓았다.

이 길이 좀 단조롭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이 길은 ‘단풍의 능선’이라고 불러야 할 만큼 능선 전체가 온통 단풍나무 군락이다. 흔히 사람들이 지리산 단풍하면 피아골이나 뱀사골, 칠선계곡을 많이 떠올리지만, 지리산 최고의 단풍군락지라면 바로, 이 칠불암 능선을 지칭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 길은 올라가는 데는 3시간, 내려오는 데는 2시간 정도 잡으면 된다.

과거에는 화개재 북쪽 200m 아래에 있는 뱀사골 산장의 모든 물품을 목통마을 주민들이 지게로 운반해 주었는데, 그 모습은 영락없이 옛날 방식 그대로였다. 그 모습을 보면 옛 농민들이 그 뼈 빠지던 고난과 오늘의 풍요로움 사이에서 많은 생각이 인다.

우리나라 마지막 산장 지게꾼은 누구였을까? 아마도 설악산 임기종 씨가 아닐까, 그는 130킬로가 나가는 냉장고까지 지고 산에 옮긴 적이 있다고 한다. 옛날에야 쌀 한 가마니가 80킬로였지만 20킬로 쌀가마니로 하며 6가마 반이다.

그는 이렇게 어렵게 돈을 벌어서 1억 원 이상을 기부했다고 한다. 부인도 지적 장애가 있고 아들도 시설에 있다고 한다. 그런 자식에게도 미안해 이런 선행을 베풀고 있다고 하는데, 그 일도 TV 출연 때문에 지금은 끊겼다고 한다.이제 토끼봉을 향해 오른다. 왜 토끼봉일까?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어서 올라가 볼까? 아니면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처럼 한숨 자고 올라갈까. 한참을 걸어온 일행들이 하나둘 자리에 앉는다. 배낭에 있던 사탕을 꺼내 하나씩 돌린다. 이 높은 산중에서는 모든 것이 귀하고 또한 반갑기만 하다.

토끼봉에서. 촬영=윤재훈 기자
토끼봉에서. 촬영=윤재훈 기자

이제 토끼봉을 향해 오른다. 왜 토끼봉일까?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어서 올라가 볼까? 아니면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처럼 한숨 자고 올라갈까. 한참을 걸어온 일행들이 하나둘 자리에 앉는다. 배낭에 있던 사탕을 꺼내 하나씩 돌린다. 이 높은 산중에서는 모든 것이 귀하고 또한 반갑기만 하다.

연하천 산장의 저녁 무렵. 촬영=윤재훈 기자
연하천 산장의 저녁 무렵. 촬영=윤재훈 기자

드디어 연하천 산장이다. 먼저 온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쉬거나 식사 준비를 한다. 입구에는 이원규 시인의 시 한 구절이 걸려있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꽃 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시라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이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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