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돌봄현장@후쿠오카④]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잔다... ‘요리아이’ 요양원 편

김남기 기자
  • 입력 2023.06.26 14:05
  • 수정 2024.01.30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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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저귀는 싫다. 오줌, 똥은 화장실에서 누고 싶다.

식사는 집밥처럼 맛있게 먹고 싶다.

혼자가 아니라 모두 함께 먹고 싶다.

내키지 않은 재활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

날씨가 좋은 날은 훌쩍 밖으로 나와 흐르는 계절을 느끼고 싶다

요양원 스케줄에 매이기 싫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차를 마시고,

옛날이야기에도 꽃을 피우고 싶다.

내가 살던 익숙한 거리와 집에서 나답게 살고 싶다.

낯선 곳에서 외롭게 죽는 것보다,

늘 곁에 있는 사람들 곁에서 온화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 어르신이 만들어 가는 요양원 ‘요라아이’ 생활지침

 

한일리빙랩 교류회 참여자, 요양원 ‘요리아이’ 방문. 촬영=이모작뉴스 김남기 기자
한일리빙랩 교류회 참여자, 요양원 ‘요리아이’ 방문. 촬영=김남기 기자

[이모작뉴스 김남기 기자] ‘한일 리빙랩 네트워크 포럼’ 참가자와 함께 일본의 대표 요양원인 ‘요리아이’를 견학했다. 우리나라 보다 앞선 초고령사회의 일본. 그들이 자랑하는 요양원의 모습은 어떨까? 나름, 한국의 요양원 시설을 둘러 본 기자는 적지 않은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아니, 기대한 모습 자체가 편견이었다. 나와 일행은 요양원의 새로운 모델을 본 것이다. 부러웠다. 그리고, 본받고 싶었다.

'미요시 스미코' 씨의 101세 생일잔치. 사진=요리아이 요양원 제공
'미요시 스미코' 씨의 101세 생일잔치. 사진=요리아이 요양원 제공

101세 어르신 생일잔치 풍경

5월 23일 미요시 스미코씨의 101세 생일잔치가 열렸다. 미요시 씨는 요양보호사의 도움으로 가마 타고 생일잔치 연회장(?)에 입장했다. 성대한 박수와 색종이와 함께 생일잔치가 시작됐다.

축하의 감주는 일본의 전통인지 몰라도, 힘찬 기합과 함께 뚜껑이 열리고, 감자와 함께 나눔을 선사했다. 그리고 ‘요리아이’의 자랑거리 여흥시간에 여장한 남성직원의 재롱잔치. 어르신들의 대폭소와 함께 흥겨운 춤과 노래가 흐른다.

미요시 씨의 만점의 미소가 전사된 케이크 컷팅이 이어지고, "미요시 씨! 미요시 씨의 얼굴 케이크예요!"라고 말하면, "우와아~!"하는 함성소리. 마무리는 직원이 하루 만에 정성 들여 만든 구슬 꾸러미 선물로 막을 내렸다.

택로소(宅老所) ‘요리아이’에 대해 설명하는 매니저. 촬영=김남기 기자
택로소(宅老所) ‘요리아이’에 대해 설명하는 매니저. 촬영=김남기 기자

택로소(宅老所) ‘요리아이’...요양원 ‘더 사랑’

택로소(宅老所) ‘요리아이’는 우리나라 말로 요양원 ‘더사랑’이다. 택로소(宅老所)는 우리나라의 너싱홈과 요양원의 중간단계의 시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편의상 요양원으로 표기한다.

1991년 ‘오오바 노부오’ 씨는 92세에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갈 곳 없는 여성이었다. 주변의 도움으로 ‘덴쇼지’라는 절의 다실을 빌려 생활했다. '요리아이'의 시작이다. 그 당시 일본은 치매를 겪는 홀몸 어르신을 수용할 만한 곳은 없었다.

1995년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문을 열었고, 후쿠오카 니시카타오키 지진의 영향으로 벽의 균열이나 건물의 왜곡이 심해져, 2007년 장소에 이전 신축했다. ‘요리아이’는 차츰 노인들의 거처를 마련하고, 가족이나 지역사회의 돌봄의 거점이 되어 갔다.

현재 새롭게 만든 ‘요리아이’는 2015년 4월 후쿠오카시 최초로 목조구조의 2층짜리 요양시설을 만들었다. 나무의 따뜻한 감성을 품은 이 요양원은 후쿠시마 외곽의 한적한 시골마을에 자리 잡았다.

‘요리아이’의 노인은 총 26명이 거주하고, 2명은 단기 거주를 하고 있다. 직원은 총 24명으로 시설장 1명, 생활 상담원 1명, 요양보호사 16명, 간호사 1명 이외 5명이 운영한다.

‘요리아이’는 노인의 인권을 존중해 주는 곳으로 소문이 나서인지 인기가 많다. 그래서 이곳을 이용하려는 대기자가 40~50명 정도 된다.

요양시설도 거부한 치매노인의 안식처

요리아이 요양원의 어르신은 타 요양원에서 퇴소조치를 당한 분이 많다. 촬영=김남기 기자
요리아이 요양원의 어르신은 타 요양원에서 퇴소조치를 당한 분이 많다. 촬영=김남기 기자

"문제의 원인은 치매노인이 아니라, 주변환경과 요양시설 시스템에 있다."
- '요리아이' 요양원 매니저

일본의 요양시설의 치매 노인은 대부분 집에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래서 주변 사람에게 폭언하거나, 시설 밖으로 뛰쳐나가는 경우가 많다. 이때 , 시설은 진정제를 투여하거나, 감금하거나 퇴소 조치를 한다. 혹은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한다.

‘요리아이’는 중증 치매환자로 요양시설에서 조차 버림받은 분들의 안식처였다. 이곳에서 까다로운 치매노인을 관리하는 노하우는 단순하다. ‘치매노인을 위해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이다. 치매노인의 페이스에 맞추어 모든 생활이 이뤄진다.

‘요리아이’는 치매노인의 폭력적인 행동 등 모든 문제의 원인을 치매노인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주변환경과 시설의 시스템에서 찾았다. 한마디로 누구나 원하는 자연스러운 삶을 사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이다.

‘요리아이’ 돌봄 노하우

요리아이 어르신은 노래 부르거나, 이야기 나누거나, 잠을 자거나, 내가 하고 싶은 일만한다. 촬영=김남기 기자
요리아이 어르신은 노래 부르거나, 이야기 나누거나, 잠을 자거나, 내가 하고 싶은 일만한다. 촬영=김남기 기자

#1 싫어하는 것은 피한다

‘요리아이’의 노인은 여기서 생을 마감하고 싶어 한다. 편안하게, 익숙한 곳에서, 따뜻한 분위기에서, 모두한테 둘러싸여서, 평화롭게 가고 싶어 한다.

그동안 쌓은 ‘요리아이’의 돌봄 노하우는 바로 ‘어르신이 싫어하는 일은 안 하시도록 하는 것이다’.

보통 요양시설은 매뉴얼에 맞춘 돌봄계획이 있다. 24시간 일정표에는 몇 시에 일어나고, 식사하고, 재활하고, 씻는 시간이 빼곡히 들어가 있다.

 

항상 열려있는 뒷마당, 매실나무 아래서 차 한잔 즐기기에 제격이다. 촬영=김남기 기자
항상 열려있는 뒷마당, 매실나무 아래서 차 한잔 즐기기에 제격이다. 촬영=김남기 기자

#2 활짝 열려있는 문

이외에도 ‘요리아이’가 일본에서도 유명한 요양시설로 인정받은 이유가 있다.

바로 활짝 열려있는 문이다. 일본에서도 이런 시설은 아마 없을 것 같다고 한다. 아주 작은 시설을 제외하고는 거주시설을 동반하는 곳에서 이처럼 문을 개방하는 것은 좀처럼 힘들다.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마당과 쉼터가 건물 앞뒤로 배치돼 있다. 실내에 유닛별 모임장소도 있지만, 볕이 좋은 날이면, 야외에서 차도 즐긴다. 매실나무에 열매가 무르익으면, 함께 열매를 수확해서 매실차를 만들어 나눠마신다.

또 어르신이 좋아하는 것은 ‘드라이브’이다. 얼마 전에는 온천도 함께 다녀왔다. 또 명절이나 생일 때 가족이 찾아오면, 나들이를 다녀온다.

어르신이 마을 산책하러 나가면, 동네 분도 만나 인사도 하고, 어린이집 아이들과 서로 인사하고 지낸다.

점심식사 후, 자원봉사자와 즐거운 한 때. 사진=요리아이 제공
점심식사 후, 자원봉사자와 즐거운 한 때. 사진=요리아이 제공

#3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돌봄 네트워크

‘요리아이’는 지역사회에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을 위해 ‘요리아이’의 요양보호사는 민생위원(돌봄 자원봉사자)과 함께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지역의 노인들이 교류하는 살롱이나, 마을회관 모임 등에서 이동편의나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특히 지역 어르신의 다양한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소그룹별로 활동해, 어르신의 필요한 부분을 메우려고 노력한다. 작은 마을에서 민생요원은 어르신 집에 숟가락 몇 개 있는지 정도는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위급한 상황이나, 건강상에 문제를 재빨리 대처할 수 있다.

특히 지역 민생위원은 ‘나도 언제가 어르신처럼 나이 들고, 같은 입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곧 미래의 나의 삶의 초석이라고 생각한다.

어르신 거주시설 스케치

거실 가운데 위치한 주방, 어르신의 식사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촬영=김남기 기자
거실 가운데 위치한 주방, 어르신의 식사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촬영=김남기 기자

이곳은 일본 목조 전통가옥 형태로 꾸며져 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한옥에서 거주하는 것이다. 식사하는 곳은 큰 거실에 주방이 가운데 있다. 주방 구석구석 잘 보이게 설계되어, 누구나 조리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왜냐면, 어르신이 식사하시는 모습을 볼 수가 있고, 직접 배식도 하면서, 어르신이 좋아하는 음식, 식사하는 표정에서 식사의 만족도를 느낄 수 있다.

어르신 소모임은 2개로 나뉘어서 여덟 분씩 활동한다. 우리가 방문 시 한 모임서는 오키나와 전통악기 ‘산신’에 맞추어 노래 부르고 있었다. 한국에서 견학 온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따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지 않고, 시간을 보내면서 무엇을 할지는 어르신과 상의한다. 어르신이 마음에 내키는 데로 한다.

노래를 부르거나 잠을 자거나, 조용히 앉아 있거나, 차를 마시거나, 각각 자기 스타일 데로 모임활동을 하고 있다.

‘요리아이’  요양원 어르신 1인용 침실. 촬영=이모작뉴스 김남기 기자  
‘요리아이’  요양원 어르신 1인용 침실. 촬영=김남기 기자  

숙소는 1인실로 침실과 세면대와 화장실이 있다. 방안은 깨끗하게 정리 정돈되어 있고, 큰 창으로 햇볕이 잘 들어오고 있다. 집에서 사용하는 물건들을 가져와서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이동의 편리성도 잘 갖춰져 있다. 처음에는 잘 걸어 다니셨던 분도, 시간이 지나면서 걷기 힘들다. 그래서 기어다니거나 엉덩이로 밀고 다닌다. 그래서 문턱 없는 평평한 바닥은 중요하다. 벽에는 지지대가 걷는 데 도움을 준다.

105살 어르신 생전 사진과 어르신 운동회 상장 전시 공간. 촬영=이모작뉴스 김남기 기자
105살 어르신 생전 사진과 어르신 운동회 상장 전시 공간. 촬영=김남기 기자

모임장소 입구에 작은 테이블에 사진과 상장이 전시돼 있다. 이 소모임에서 105살까지 살다 돌아가신 분의 흔적과 어르신 운동회 때, 받은 상장도 전시돼 있다.

목욕탕에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위한 고령친화 욕조나 도구들이 비치돼 있다. 그런데 사람 사는 곳에 있어야 할 냄새가 안 났다. 선입견인지 몰라도 몸이 불편한 어르신의 숙소에서 냄새가 안 난다는 것은 좀 의아했다.

‘요리아이’ 어르신은 기저귀를 안차고, 화장실을 이용한다. 그리고 자주 목욕을 한다. 촬영=김남기 기자

자주 목욕한단다. 그리고 가능한 기저귀를 안 쓰고, 화장실에 가시도록 최대한 지원을 한다.

요리아이 요양보호사는 “혼자서 화장실 못 가시는 분도, 갑자기 목소리가 조금 커진다거나 화장실 가고 싶을 때의 습관적인 행동을 요양보호사가 읽고 급히 화장실로 인도한다.”고 전했다. 

기저귀를 찬다는 것은 굉장히 자존감이 떨어지는 일이다. 이는 요양시설의 편리성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곤 한다. 이마저도 예산과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몇몇 요양원은 제대로 갈지 않는 곳도 있다.

자원봉사자 마츠모토씨는 13년전 어머니가 계셨던 곳에서 식사준비에 참여했다. 사진=요리아이 제공
자원봉사자 마츠모토씨는 13년전 어머니가 계셨던 곳에서 식사준비에 참여했다. 사진=요리아이 제공

‘요리아이’의 꿈...요양시설이 없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요리아이’는 시스템 중심이 아니라, 여기 계신 어르신들 중심으로 운영한다. 또 지역사회와 함께 돌봄을 이어가는 것을 중요시 여긴다.

누구나 나이 들어 요양시설에서 생활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요양시설에 들어가지 않아도, 내가 살던 곳에서 나답게 살아가는 지역사회를 만들고 싶다.
- ‘요리아이’ 운영 담당자

요리아이는 항상 개방되어 있는 열린공간이다, 거실풍경. 촬영=김남기 기자
요리아이는 항상 개방되어 있는 열린공간이다, 거실풍경. 촬영=김남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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