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반격] "의자 좀 놔주랑께!"..성미산마을 선배시민 플래시몹

김남기 기자
  • 입력 2023.07.03 18:17
  • 수정 2023.07.03 19:3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쉼터농성 플래시몹
도란도란 이야기 나눠요

놀다가~ 쉬다가~

우리 같이 앉자
도장 찍어 줄 거야 (투표)
모두를 위한 공간
- 성미산마을 선배시민, 플래시몹 플래카드 구호

마을쉼터 플래시몹 플래카드. 사진=한국에자이 제공
마을쉼터 플래시몹 플래카드. 사진=한국에자이 제공

[이모작뉴스 김남기 기자] 6월 20일 오후 망원동과 성산동에 마을 선배시민이 거리로 나왔다. 간이 의자를 들고, 늘 힘겹게 걸었던 길 위에 서성인다. 의자를 펼치고, 결연한 각오로 앉아서 플래카드를 들었다.

이날 마을쉼터 마련을 위한 플래시몹에 참석한 성미산마을의 선배시민은 팔순을 넘긴 분이 대부분이고, 구순을 넘긴 분도 있다. 나이가 든다는 건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며, ‘집 밖'을 나선다는 것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따뜻한 햇살에 일광욕과 비타민D도 보충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싶지만, 마을에 마땅히 쉴 공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성미산마을 선배시민은 시민의 권리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마을주민을 위한 마을쉼터 공간 마련을 위해, 구청에 한목소리를 내보는 '행동'인 플래시몹을 해보기로 했다.

지난해, 이들은 성미산마을의 이야기가 담긴 공간을 소개하는 커뮤니티 매핑 앱을 만들면서 마을 곳곳을 답사했다. 이 작업 중에 아쉬웠던 것은 마을 쉼터가 너무 없다는 것이었다.

유해숙 교수의 선배시민 강의를 듣고 있는 성미산마을 선배시민. 사진=한국에자이 제공
유해숙 교수의 선배시민 강의를 듣고 있는 성미산마을 선배시민. 사진=한국에자이 제공

우리가 뭣을 해야 쓰것나!

그동안 성미산마을 선배시민은 어르신이란 말이 익숙했다. 이번 마을쉼터 마련을 위한 플래시몹에 앞서 선배시민 공부를 했다. 선배시민의 의미에 관해 유해숙 교수의 강의를 함께 경청했다. 선배시민의 권리를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강의였다. 강의 중에 선배시민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래 우리가 선배시민이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을 위한 목소리를 내자.”

그래서 행동하기로 했다. 마을주민을 위한 마을쉼터를 만들기로 했다. 이는 노인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 모두를 위한 공간이기도 했다. 선배시민의 목소리가 공허한 울림에 그치지 않기 위해, 홍보캠페인과 구청에 민원을 넣기 위한 퍼포먼스가 필요했다. 그래서 선배시민이 직접 현장을 답사하고, 쉼터 의자를 준비해서 플래시몹을 시연하기로 했다.

다리가 불편해 경로당 가는 길에 2~3회 쉬어야 한다.
화단만 보이면 걸터 앉아서 쉰다.
땅바닥에 앉으면 다리가 아파서 일어날 수가 없다.
쉴만한 공간은 자동차가 불법주차 돼 있다.
의류수거함 설치 공간에 쉬어갈 수 있는 의자를 놓자.
가게 앞에는 사유지라 앉기가 어렵다.
예전에는 의자가 있었는데, 개발되면서 다 치워버렸다.
동네 사람 지나가는 거 보고 인사도 나눌 쉼터가 필요하다.
젊은 사람은 돈 내고 카페 가는데, 공짜로 쉼터에서 얘기하면 좋아할 것이다.
- 성미산마을 선배시민 인터뷰

망원동 선배시민이 의자에 쓴 '의자 좀 놔주랑께!'. 촬영=김남기 기자 
망원동 선배시민이 의자에 쓴 '의자 좀 놔주랑께!'. 촬영=김남기 기자 

의자 좀 놔주랑께!

성미산마을 마을활동가와 선배시민 10명(망원동 5명, 성산동 5명)이 망원동 팀과 성산동 팀으로 나뉘어, 쉼터가 있으면 좋겠는 장소에 가서 직접 꾸민 의자에 앉아서 주민들과 함께 플래시몹을 진행했다.

먼저 망원동에 위치한 박 선배시민 댁에 모였다. 마음과 정성이 담긴 의자를 꾸미는 작업을 했다. 의자에 자신의 바램을 적고, 그림도 그렸다. 그리고 어르신이 많이 거주하는 망원동 성도빌라 주변에서 행사를 열었다.

망원동 마을쉼터 플래시몹. 촬영=김남기 기자 
망원동 마을쉼터 플래시몹. 촬영=김남기 기자 

“구청장님. 우리가 어째서 이렇게 왔냐 하면은 우리가 이렇게 길에 가다가 쉴 때가 없어서 쉴 의자 좀 놔주란 끼롬” - 망원도 선배시민
"쉬다가~~ 놀다가~~~"
"의자 좀 만들어 주랑께~~"
“쉼터 만들어 주면 도장 찍어 줄게~”(투표)

성산동 마을쉼터 플래시몹. 사진=한국에자이 제공
성산동 마을쉼터 플래시몹. 사진=한국에자이 제공

성산동은 선배시민이 길을 가다 다리가 아프면, 다세대주택의 화단에 앉아 쉬었다. 사유지라 의자를 놓기는 어렵겠지만, 쉼터가 생기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플래시몹을 진행했다.

경로당 가는 길에 종종 쉬었다 가는 곳에서도 의자를 놓았다. 오가는 길에 마을 주민들을 만나서 즉흥적으로 함께 행동하기도 했다.

‘마을쉼터’ 가치를 더하다

거동에 제한이 있는 선배시민은 ‘동네’가 중요하다. 바깥에 쉴 곳이 있다면, 더 외출을 자주 하고 싶어 한다. 외부활동을 통한 사회생활 확장과 관계형성은 건강에 도움이 된다.

자신이 느끼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역량을 향상하고, 도전해 볼 기회가 필요하다. 그 역량이 오늘 발휘됐다. 마을쉼터가 만들어 지면, 선배시민과 주민에게 휴식과 대화의 장이 될 것이다.

- 마포희망나눔 신비

가자~성산동 마을쉼터 플래시몹. 사진=마포희망나눔 제공
가자~성산동 마을쉼터 플래시몹. 사진=마포희망나눔 제공

선배시민 마을쉼터 마련을 위한 플래시몹을 도운 기관은 ‘마포희망나눔’과 '한국에자이'이다. 그동안 두 기관은 망원동과 성산동 선배시민을 직접 만나서 애로사항을 경청한 결과, 마을 쉼터의 필요성을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선배시민은 앉을 자리가 있더라도, 사적공간의 경우 눈치를 보며 앉지 않았고, 대부분 건물 벽이나, 계단, 바닥, 안전바 등에 앉았다. 그래서 마포희망나눔은 마을이 함께 가꾸는 쉼터를 만들기로 했다.

마을에 쉴 곳이 없다 ▶ 선배시민이 쉴 곳이 필요하다 ▶ 마을쉼터 만들자는 목소리를 낼 기회를 만든다 ▶ 선배시민의 활동으로 마을쉼터에 대한 주민과 구청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 마을이 함께 가꾸는 쉼터를 만든다.

골목길 노후 의자를 새 벤치의자로 교체. 사진=사직동 제공
골목길 노후 의자를 새 벤치의자로 교체. 사진=사직동 제공

지난해 사직동주민센터는 지역 어르신에게 쾌적하고 안전한 동네 쉼터를 제공하기 위해 사직로6길 골목에 자리하고 있던 기존 노후 의자를 새 벤치의자로 교체했다. 동주민센터 환경순찰 중 노후가 심해 미관을 저해하고 있는 기존 의자를 발견, 도시녹지과 목공소에 의뢰해 재능 기부를 받아 설치하게 됐다는 후문이다.

인근 거주 어르신은 “평소 자주 이용하던 의자가 오래돼 부서져 안타까웠는데, 이렇게 멋진 공간을 새로 만들어줘 고맙다”고 말했다. 이처럼 도심지에 마을 단위로 쉼터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지만, 실제로 설치하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고무신에다가 물을 여러 명이 받아서, 펌프에다가 물을 담는 것을 마중물이라고 한다. 작은 힘이 합치면, 누구나 풍족한 사용할 물이 길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늘 우리가 만든 행동이 대단한 것은 아니어도 우리가 힘을 모으면, 변화의 물꼬를 만들어 낼 마중물을 만들 것이다.
- 한국에자이 서미경

망원동 박금례(91세) 선배시민. 촬영=김남기 기자
망원동 박금례(91세) 선배시민. 촬영=김남기 기자

여러 사람이 모여야 해,
만약에 쉼터를 만든다면, 많이 모일 거야.
우리 구청에 가서 말 한번 해보자고.
되든지 안 되지 한번 가보자고.
- 망원동 박금례 선배시민

성미산마을 플래시몹 활동 다큐멘터리

 

저작권자 © 이모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