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좌충우돌 여행기] 걸으면 비로소 보이는 서울...걸어서 보는 박물관 기행 외

김남현 여행작가
  • 입력 2023.02.17 17:13
  • 수정 2023.03.02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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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좌충우돌 여행기는 '노원50+ 여행작가교실'을 수료한, 시니어 여행작가들의 작품을 연재한다.

노을 빛 남산. 촬영=김남현 여행작가

[김남현 여행작가] 굳이 아침형 인간이 아니어도 오늘은 일찍 일어나야 한다. 새로 시작한 역사 기행 프로그램 박물관 수업이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 박물관이 있는 곳까지는 지하철로 이동한다. 언제부턴가 대중교통이 참 편리하다고 느껴지면서 이동 수단으로 이용한다. 달리는 지하철 차창 사이로 무채색 잿빛 하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목적지에 가까워지는 방송을 들으며 천천히 개찰구를 빠져나와 약속 장소로 발걸음을 옮긴다. 포근한 날씨에 봄이 성큼 다가옴을 느끼며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려는 개나리 담장을 돌자,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한글박물관>이 시원스럽게 나타난다.

한글로 쓴 최초의 시가문학 ‘용비어천가’. 촬영=김남현 여행작가

대한민국의 자랑, 훈민정음

<국립한글박물관>은 ’거울못‘을 지나 산책로를 따라가면 햇살 좋은 위치에 높다란 건물이다. 전경 앞에 ‘고마워 한글’이 쓰여 있는 계단이 나온다. <국립한글박물관>은, 건축 개념으로 보면 한글의 모음을 형상화하여 만든 흔적이 보인다. <국립한글박물관>은 2014년 10월 9일 한글날에 개관을 하였고. 한글의 문화적 우수성, 자료 관리를 통해 한글을 보존하고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국립한글박물관 전경. 촬영=김남현 여행작가

훈민정음이 한글이라고 불린 이유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뒷길을 따라 200미터쯤 올라가면 작은 네거리가 나온다. 그곳의 범상치 않은 건물 이름이 지나는 이의 발길을 붙잡는다. 제일 먼저 도로 왼쪽으로 2004년 건설된 18층짜리 오피스텔이 눈에 띈다. 바로 ‘용비어천가 빌딩’이다. '용비어천가'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첫 시험으로 쓰인 악장 이름이다. 빌딩 이름을 그처럼 거창하게 붙인 건, 그곳이 한글학자 주시경(1876~1914)의 집터이기 때문일 것이다. 주시경은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의 대중화에 앞장선 인물이다. '한 (큰, 많은, 넓은, 바른, 하나의 뜻)'과 '글'의 합성어인 ' 한글'이라는 명칭도 그가 만들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전경. 촬영=김남현 여행작가

역사의 향기가 나는 <국립중앙박물관>

<국립 중앙 박물관>은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기 전에 경복궁 안 <국립고궁박물관> 자리에 있었다. 2005년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재탄생 되어 용산으로 이전하였다. 입구 쪽으로 가다 보면 건물 사이로 남산타워가 한눈에 들어온다.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국립미술관>의 모습과 다르게, 전통미술의 혼을 볼 수 있다.

현대미술과 전통미술의 경계가 무색해진 오늘날에는 박물관에서도 현대적인 미술품 전시가 열리기도 한다. 가끔 한 번씩 와본 곳이지만 오늘만큼은 큐레이터(학예연구사)를 자처하는 강사님의 수고가 있어 한껏 고무된 역사 기행이 될 것 같다. 그동안 감흥 없이 둘러본 시간이라면, 오늘은 알지 못했던 역사 시간을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이 아닌가. 글을 쓰는 수업이 아니라도 다시 보는 시대의 과거를 되짚어 올라가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했는데 오늘이 그런 날이다.

근대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장소는 서울 곳곳에 있다. 하루에 돌아볼 수 있는 거리도 아니고, 그중에서도 용산구를 첫 번째로 탐방하게 된 동기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품명품에나 나오는 진품을 눈으로 보고, 후각을 통해 시간의 냄새를 맡으며, 귀를 크게 열어둘 것이다. 한곳에 모아둔 박물관의 ‘유물’은 영화(벤저민의 거꾸로 가는 시간 속)처럼 여행하게 해준다. 유물과 함께한 시간 이야기는 ‘유사’로 불리며, 유물이 발견된 장소는 ‘유적지’로 남게 된다. 그런 소중한 시대상을 모아둔 보물들이 ‘유물’로 남겨져 보관되어 있으니, 누구나 한 번쯤 다녀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때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감상자의 안목이 필요하기도 하다.

국보86호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 촬영=김남현 여행작가

국보 86호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은 고려 충목왕(1348) 때 ‘경천사’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부소산) 절에 세워졌던 탑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수난을 겪었다. 1960년 경복궁에 세워졌다가 현재는 국립박물관으로 옮겨 놓았다.

실내로 들어오면 높은 탑이 통로 끝에서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실내에 탑이 들어선 것은 외부에서 산성비를 맞으며 조각품이 훼손되기 때문에 안전하게 하기 위해 지금의 자리에 옮겼다. 그 당시 독특한 문양의 탑신과 화강암이 아니라 대리석을 이용한 단이 이채롭다. 탑신부 명문에는 “원나라의 황제와 고려 왕실의 수복(壽福)을 기원하며 나라가 평안하고 백성이 편안하기를 바라는 글이 적혀있다.”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비. 촬영=김남현 여행작가

배호의 마지막 잎새, '돌아가는 삼각지'

’돌아가는 삼각지‘는 배상호 작곡가가 배호에게 부탁해서 장충동 녹음실에서 완성했다. 신장염으로 병세가 아플 때 녹음을 시작했고, 한 소절 만 불러도 숨이 차올라, 없는 쉼표를 만들어 노래를 부르며 녹음을 했다. 원래 이 노래의 '돌아가는 삼각지'란 표현은 연인을 만나지 못하고 그저 같은 장소만 빙글빙글 맴돌다가 돌아간다는 의미였으나, 이 노래가 히트하고 1년 후 삼각지에 진짜로 회전교차로가 생겼다. 지금은 회전교차로는 사라지고 노래만 남았다. 1967년 일이다.

삼각지 로타리에 궂은 비는 오는데
잃어버린 그 사랑을 아쉬워하며

비에 젖어 한숨 짓는 외로운 사나이가
서글피 찾아왔다 울고 가는 삼각지

삼각지 로타리를 헤매 도는 이 발길
떠나버린 그 사랑을 그리워하며

눈물 젖어 불러보는 외로운 사나이가
남 몰래 찾아왔다 돌아가는 삼각지

- 배호노래, 배상태작곡 <돌아가는 삼각지>

‘옛집’ 할머니 국수집. 촬영=김남현 여행작가

‘옛집’ 할머니 집 국수 한 그릇

‘옛집’ 할머니 국수집을 찾아가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의 고백으로 알려지게 된 국숫집 사연에, 호기심과 미담으로 전해져 사람들 발걸음이 잦아든 국숫집 이야기가 이곳에 있다. 배고픈 시절 분식이 장려되고, 먹을 게 귀하던 시절 할머니의 국숫집은 온전히 먹고 살기 위해 작은 가게에 간신이 테이블 서너 개를 깔고 장사를 시작하였다.

어느 날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선 청년이 있었다. 삐쩍 마른 몸매에 웃음기 없는 모습으로 테이블에 앉아 국수를 주문했다. 너무 배가 고픈 청년은 국수를 주문하고, 따뜻한 국수가 테이블에 내려놓기 무섭게 허겁지겁 국수를 입으로 가져갔다. 금세 뚝딱 비어버린 청년의 빈 국수 그릇에 주인장 할머니의 국수가 새롭게 채워졌다. 새로 채워진 국수도 금세 다 비어 있었다. 이윽고 사방을 둘러보던 청년은 계산을 치루 지도 않은 채 허겁지겁 가게 문을 열고 오던 길로 냅다 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할머니는 점방 문 앞에서 뛰어가는 청년 뒷모습을 보면서 소리친다.

뛰지 말어
그러다 넘어지면 다쳐
천천히 걸어가
배고프면 다시 오시게나

냅다 달아나던 청년은 할머니의 외침에 뛰던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한동안 펑펑 쏟아 내었다. 시절이 흘러 그 청년은 멀리 타국에서 성공한 사업가가 되어 있었고, 가정도 꾸리고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 힘들었던 시절 늘 한 쪽에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던 ‘할머니국수집’ 생각에 잊지 않고 감사의 편지를 보내고, 국숫집 사연이 고국에 전해지면서 미담으로 알려지게 된 ‘할머니국수집‘이다.

역사 기행을 다녀와서 글을 쓰는 일은 또 한 번 시간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과정 자체가 성찰과 사유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역사 기행을 다녀와서 잘 갔다 왔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를 통해 다녀온 의미를 되새기며, 삶이 더욱 성숙해지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함께 하신 분들과 강사님께 애정을 담아 감사 인사를 전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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