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행이다㊲] 지리산 ‘화대(華大) 종주’를 꿈꾸며20...지리산, 동족상잔의 비극의 山

윤재훈 기자
  • 입력 2023.10.20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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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족상잔의 비극이 고스란히 머물러 있는 山.
친일이 청산되지 않아 모든 비극을 머금고 있는 땅,
동포들의 가슴에 총을 겨눌 수 없다는 그 마음에 총을 난사하여,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만들어 낸 위정자들,

해방공간에서 만들어진 그 비극들이 수많은 독립투사의 피를 요구했고,
78년 동안 해결되지 못한 민족의 한으로 남아 있다.
지금도 철조망 건너 동족의 가슴에
서로 총을 겨누고 있는 비극의 땅이다.

산첩첩 골골 아래 민초들이 모여산다. 촬영=윤재훈 기자
산첩첩 골골 아래 민초들이 모여산다.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음양수, 음양수(陰陽水), 자꾸만 읊조리니 입 안에서 단내가 나는 듯하다. 그 푸른 물맛을 한번 맛보고 싶다. 아이를 갖고 싶어 그 물을 마셨다는 연진 여인의 전설이 지리산 바람 따라 흘러 다니는 곳. 혹시 아이가 생기지 않은 부부들이 이 산에 들어와 음양수 물을 마시면 꿈결 같이 아이 하나가 덩그러니 생겨 백년해로(百年偕老)하지 않을까.

주변에는 기도객의 토굴 터도 있고 논밭의 흔적도 남아 있었다. 돌절구통도 하나 있어 마을이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역사적으로도 조선조 말기에는 동학농민군들이 숨어 살았다고 한다. 의병들의 산채가 이 일대에 있었으며, 일제 강점기 때는 징용을 거부하던 사람들도 깃들었다고 한다.

대성 계곡에 30년 이상 살았다던 임봉출 할아버지는, 음양수 주변에서 거주하던 주민들이 여순 사건 이후 대성 계곡 상류 쪽으로 올라갔다가, 5, 16 직후 삼신봉 남쪽의 청학동으로 옮겨 갔다고 말했다.

그곳 사람들은 원래 도학을 공부하며, 속세와 인연을 끊고 살고 있었지요.
그들 가운데는 세상에 노출되는 것을 꺼려, 지리산 더 깊은 곳으로 숨어든 사람들도 적지 않았어요.

지리산 옥류, 촬영=윤재훈 기자
지리산 옥류, 촬영=윤재훈 기자

동족상잔의 비극이 고스란히 머물러 있는 山.
친일이 청산되지 않아 모든 비극을 머금고 있는 땅,
동포들의 가슴에 총을 겨눌 수 없다는 그 마음에 총을 난사하여,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만들어 낸 위정자들,

해방공간에서 만들어진 그 비극들이 수많은 독립투사의 피를 요구했고,
78년 동안 해결되지 못한 민족의 한으로 남아 있다.
지금도 철조망 건너 동족의 가슴에
서로 총을 겨누고 있는 비극의 땅이다.

세석대피소에서 북쪽으로 내려가면 그 유명한 한신계곡과 백무동 계곡이 있다. 그러나 그 위세에 눌려 있지만, 남쪽으로 내려가도 그에 못지않은 수십km의 거림계곡이 있다.

와룡 폭포를 시작으로, 소(沼)가 넓고 깊어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는 윗용소와 아랫용소, 주변의 반석들이 넓어 수백 명이 앉아서 놀 수 있을 만큼 깨끗한 계곡이다. 도장골에도 이런 유명 무명의 소와 폭포들이 수두룩하며, 집채 같은 석실도 있고 넓은 반석이 잇달아 나타나 가족 나들이에 이상적이다. 하류 쪽으로는 밀금폭포가 있는데, 비라도 온 뒤에는 웅장한 물보라를 일으키면 거세게 내리꽂히는 물줄기가 경이롭다.

구름이 머흐레라. 촬영=윤재훈 기자
구름이 머흐레라. 촬영=윤재훈 기자

현지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윗용소와 와룡 폭포 사이 깊숙한 곳에 빨치산 지휘소 캠프가 있었다고 한다. 그 흔적인 토굴식 집들이 망가진 채 대규모로 남아 있었으며 돌담 자리도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들이 이 도장골 깊숙한 곳에 지휘소 겸 후송병원을 차린 것도, 이렇게 감쪽같이 숨겨진 곳이자 난공불락의 천연요새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은 이곳을 거점으로 산청군 시천면과 삼장면은 물론 하동군 청암면과 화개면, 함양군 마천면 등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저는 정말 몰랐어요 
우리 집터 밑에 이런 왕릉이 있었다는 것을
이 미천한 농사꾼이 어떻게 알았겠어요
애초에 집을 지을 때, 무슨 돌들이 나오길래 담장에 쓴 죄밖에 없어요
그리고 보니 가끔 밤중에 울음소리 같은 것을 듣기도 한 것 같아요
저는 그냥 북풍한설에 지나가는 겨울바람 소리인 줄 알았지요
아, 그러고 보니 가끔 농사가 잘될 때도 있었어요
아마 그분이 보살펴 주셨나 보죠
여하튼, 파란 하늘 올려다보며
그 아래에서 한평생 잘 살았지유
- ‘호우총(壺衧塚)*’, 윤재훈

*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이름이 새겨진 청동 호우가 발견되어 호우총으로 명명

촛대봉에 청년 하나. 촬영=윤재훈 기자
촛대봉에 청년 하나. 촬영=윤재훈 기자

쉬엄쉬엄 연달래가 만발한 세석고원을 오른다. 이제 장터목까지 약 6km 정도 되는데, 평탄한 능선길이다. 머지않아 호야와 연진 여인의 슬픈 전설이 담겨있는 1,703m의 촛대봉이 나올 것이다. 연진 여인의 굳어진 모습이라는 그 봉우리로 가 그녀의 애처로운 눈빛을 한번 보고 싶다.

그녀는 얼마나 슬플 눈빛으로 산신령과 호야를 번갈아 바라보았을까? 산신령은 어이하여 인간의 큰 근심거리 하나를 그렇게 숨겨놓고 모른 척하였을까, 신들의 마음을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우리 동양의 신은 대부분 인간에게 선한 신이 많은 것 같은데, 꼭 그리스 로마신화에나 나오는 무지막지한 서양의 신을 보는 듯하다. 촛대봉에 올라서면 이제 천왕봉의 웅대한 모습도 바로 눈앞에서 보일 것이다.

세월에 낡은 고목, 연화봉. 촬영=윤재훈 기자
세월에 낡은 고목, 연화봉. 촬영=윤재훈 기자

멀리 연하봉이 아련하다. 지리산 8경 중의 하나인 ‘연하선경(仙境)’은 편안하다. 주능선에서 보기 힘든 층암(層巖)절벽과 능선 따라 기암괴석(奇巖怪石)이 오밀조밀하게 펼쳐진다. 세석평전을 따라 나지막이 펼쳐지는 연달래 군락처럼 능선을 오르는데, 특히 봄부터 피기 시작하는 꽃들은 세상 모든 시름을 잊게 한다.

이곳에서는 가끔 구름도 머물렀다 바람처럼 흘러가는데 잠시 앉아 명상이라도 들면 좋으련만, 일행은 장터목 산장에 도달했을 법도하다. 연하봉에 올라서면 저 아래로 우리가 두 번째 잘 곳인 장터목 대피소가 보일 것이다.

이곳을 내 생에 몇 번이나 왔을까? 지금까지 걸어온 땀방울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잔잔하게 아름답다. 파란 하늘 아래 하얀 구름이 그 어느 곳보다 자유롭고 청량하게 느껴진다. 멀리서 바라봐도 아름답지만, 그 풀들 사이를 헤치고 올라오는 내내, 기분이 좋다. 멀리 능선에 펼쳐진 암봉들이 지나온 길 중에 가장 기묘하고 특이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장터목 산장에서. 촬영=윤재훈 기자
장터목 산장에서. 촬영=윤재훈 기자

산봉우리를 넘어가자 바로 발아래가 장터목 산장이다. 항상 세석과 함께 지리산에서 가장 붐비는 대피소이다. 모두는 저녁을 먹느라 바쁘다. 우리 일행의 탁자에도 버너 위에 냄비가 끓고 다른 쪽 버너에서는 양념 된 오리고기가 지글지글 익고 있다. 하루 종일 고팠던 뱃속에 더 허기가 몰려온다. “시장이 찬이다.” 나도 배낭을 놓자마자 허겁지겁 달려든다. 일행은 대부분 식사를 끝내 가는데, 뒤에 오는 일행들을 위해 따로 오리고기를 남겨 두었다.

후미에 떨어진 세 사람은 아무래도 해지기 전까지는 여기까지 못 올 것 같아 세석에 반찬을 남겨두고 왔는데, 기어이 여기까지 온다고 했단다. 아마도 낼 새벽 천왕봉 일출을 볼 요량인 모양인데, 이미 사위(四圍)는 어두워져 오고 있어 모두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모두가 식사를 마쳐갈 무렵에 다행히 그들이 도착했다. 일행들은 박수를 치며 그들을 격려한다. 산행을 같이 하게 되면 산 밑에서 오랫동안 나누었던 인간관계보다 더 깊어지는 것 같다. 특히 장거리 산행을 함께 하고 나면 더욱 그러하리라. 지리산의 푸른 밤이 깊어져 간다. 이틀 동안 푸른 물이 잔뜩 든 일행들은 내일 새벽 천왕봉을 등정하기 위해 바삐 서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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