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행이다 ㊳] 지리산 ‘화대(華大) 종주’를 꿈꾸며21.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워지는, ’지리산(智異山)’

윤재훈 기자
  • 입력 2023.11.20 16:15
  • 수정 2023.11.26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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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공덕이 많다. 그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
소(沼)를 만나면 모든 마음을 심중(心中)에 두고,
나무뿌리에도 골고루 물을 적셔준다.

민중들의 터져 나오던 웃음소리와 고함,
상처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잔잔하게 들려준다.
이 세상의 모든 잡된 이야기들은 단지 마음속에만 두고,
그들이 버린 쓰레기들만 다 싣고 흘러간다.

급하게 흘러가거나 모나지도 않다.
이 세상에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 흘러,
그보다 더 낮은 곳에 있는 바다로 들어가 마침내 몸을 푼다.

- '물의 공덕', 윤재훈


백두대간 정맥 10대강 개념도. 자료=산림청 제공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워진다는 산, 지리산(智異山)’.
장명등(長明燈)처럼 길게 뻗어
사바의 어리석은 중생들을 인도하고 있다.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이제 그 산의 최고봉 천왕봉에 이르렀다. 기왕이면 천황(天皇)이라 쓰지 않고 왜 천왕이라 했을까, 아마도 황제가 거하는 중국 눈치 보느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기본 골격은 백두산으로부터 지리산에 이르는 백두대간의 산맥계가 중추가 된다는 인식에는 예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다. 그래서 지리산을 백두산이 흘러내린 산이라 하여 두류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것은 우리나라 전래의 지리 사상인 풍수지리설에서도 받아들였고, 실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전혀 이의 없이 전수되어 온 땅에 대한 우리 민족의 기초적인 관념이다.

1967년 12월 29일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리산은 3개도(경상남도, 전라남·북도), 1 개시(남원시), 4개군(구례군, 하동군, 산청군, 함양군), 15개 읍·면의 행정구역이 속해 영·호남 내륙지역의 경계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그 면적이 471.758㎢로서 20개 국립공원 중 가장 넓은 면적의 산악형 국립공원이다.

한반도를 구성하는 백두대간의 산줄기가 소백산, 속리산, 덕유산을 만들고 남해 앞에서 마지막 여세를 몰아 용솟음쳐 만든 지리산은 동서로 능선이 길게 연결되어 있으며, 깊은 골짜기가 연속되어 있다.

반야봉. 촬영=윤재훈 기자
반야봉. 촬영=윤재훈 기자

국토 남녘에 바닷바람을 맞으며 우뚝 솟은 지리산의 넉넉하고 아늑한 산세는, 이 지역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며 생명의 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남한 내륙의 최고봉인 천왕봉(1915.4m)을 주봉으로 서쪽 중앙의 반야봉(1,751m), 서쪽 끝의 노고단(1,507m), 등 3봉을 중심으로 그 산세는 유순하다.

동서로 100여 리의 거대한 산악군을 형성하며, 토끼봉 등 고산 준봉이 10여 개나 있으며, 85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있다. 한국 8경 중 하나이고 산역(山域)의 둘레는 800여 리에 달한다.

노고단에서 바라본 아련한 섬진강. 촬영=윤재훈 기자
노고단에서 바라본 아련한 섬진강. 촬영=윤재훈 기자

천왕봉에서 노고단에 이르는 주 능선을 분수령으로 하여 각각 남북으로 큰 강이 흘러내리는데, 북쪽의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임천강계와 남쪽의 섬진강계로 나눌 수 있다.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심원계곡, 뱀사골계곡, 백무동계곡과 칠선계곡 등을 거쳐 임천강으로 흐르고, 동쪽으로 흐르는 물은 중산리계곡과 대원사계곡을 거쳐 덕천강으로 흘러든다.

이 둘은 진주시와 진양호에서 합쳐져 남강을 이루어 낙동강으로 유입된다. 섬진강계는 전라북도 진안군 마이산과 봉황산에서 발원한다.

서쪽으로 흐르는 물은 요천강으로 흘러 섬진강의 본류와 합류하고, 남쪽으로 흐르는 물은 화엄사계곡을 거친 마산천, 피아골계곡을 거친 연곡천과 대성골을 거친 서시천(西施川)·화개천(花開川)·횡천강들과 만나 차례로 섬진강에 몸을 푼다.

용솟음 치는 급류에도 새들은 편안한 모양이다. 촬영=윤재훈 기자
용솟음 치는 급류에도 새들은 편안한 모양이다. 촬영=윤재훈 기자

이런 수많은 지류가 모이고 모여 맑은 물과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어 ‘지리산 12동천’을 만든다. 이러한 지형은 풍수지리설과 도가사상의 영향으로 우리 조상들이 선호했던 마을 입지 조건을 갖추고, 대표적인 피병(避兵)·피세지(避世地)가 된다.

물줄기들은 계곡과 상류 지역의 작은 지류들과 급류를 이루어 하방침식과 두부침식이 왕성하게 나타나 V자형 계곡과 험준한 지세를 형성한다.

그러다 섬진강이나 임천강 및 경호강과 합류하는 평야 지역을 만나면 급했던 물줄기들은 경사가 완만해지면서 유속이 줄어든다. 하여 들판에서 천천히 되새김질하는 남도의 유순한 소처럼 유유자적한 곡류천을 이루며 작은 충적평야들을 만들고, 상선약수(上善若水)처럼 흘러간다

물은 공덕이 많다. 그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
동그란 그릇에 담기면 동그랗게 되고 네모난 그릇에 담기면 네모나게 된다.
달빛 내리는 날, 부처님 갈비뼈 같은 얕은 개울을 만나면
막, 학교 들어간 아이 같이 까르륵거리는 소리를 내고,
소(沼)를 만나면 모든 마음을 심중(心中)에 둔다.
나무뿌리에도 골고루 물을 적셔주고
지나오면서 보았던 풍경들을 찬찬히 이야기해 준다.

민중들의 터져 나오던 웃음소리와 고함,
상처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잔잔하게 들려준다.
이 세상의 모든 잡된 이야기들은 단지 마음속에만 두고,
그들이 버린 쓰레기들만 다 싣고 떠나간다.

급하게 흘러가거나 모나지도 않다.
남도의 아리랑처럼 유유자적하며, 혹시 소외 받은 사람이 없는지,
구불구불 평야 지대를 쉬엄쉬엄 살펴 가며 살찐 옥토로 만들어 준다.
이 세상에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 흘러,
그보다 더 낮은 곳에 있는 바다로 들어가 마침내 몸을 푼다. 

                                                -'물의 공덕', 윤재훈

지리산 둘레길. 촬영=윤재훈 기자
지리산 둘레길. 촬영=윤재훈 기자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향수’. 이동원. 박인수

지리산에는 이칭(異稱)과 별칭(別稱)이 많다. 한자로는 지이산(智異山)이라 쓰지만 읽기는 지리산이라고 한다. 실제로 지리산을 그 음대로 지리산(地理山)이라 쓴 기록도 많다. 원래 ‘智異’는 지리라는 우리말의 음사(音寫)일 뿐이며 지리는 산을 뜻하는 ‘두래’에서 나온 이름이다.

두래는 '달'의 분음(分音)으로서 ‘두리’·‘두류’ 등으로 변음하여 ‘頭流’·‘豆流’·‘頭留’·‘斗星’·‘斗流’ 등으로 한자를 붙여 지명이 된 것이 많다. 이 중 두류(頭流)는 백두대간의 맥세(脈勢)가 흘러내려서 이루어져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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