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행이다 ㊵] 지리산 ‘화대(華大) 종주’를 꿈꾸며 23. 큰 산은 장엄하고 고요하다.

윤재훈 기자
  • 입력 2023.11.27 14:44
  • 수정 2023.11.28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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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대가 지리산 천왕봉까지
숨이 치받도록 오르고 싶다면
중산리를 따라 올라도 좋다.
계곡을 건너 숨이 몇 번 헐떡거리도록
용틀임까지 치고 나면
마침내 천왕봉이 보일 것이다.

그곳에서 웅지를 펴고
반야봉 쪽으로 손차양을 하고 바라봐도 좋으리라

그래도 못내 서운한 것이 있으며
섬진강 십 리 벚꽃 길을 걷거나,
천 년을 에돌아 나오는 천은사 범종 소리를 듣거나,
지리산으로 치는 노을 빛을 바라보며,
작설차 한 잔 혀끝에 머금어도 좋으리라

- ‘저 멀리 천왕봉이 보인다’, 윤재훈

지리산, 큰 산은 장엄하고 고요하다. 촬영=윤재훈 기자
지리산, 큰 산은 장엄하고 고요하다.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지리산은 확실히 기암괴석이 즐비한 북한산이나 설악산 등의 화강암 산지의 산세와는 구분되는 육산의 형태를 띤다. 그 모양을 보면 선캄브리아기 중기에는 이 일대가 넓은 바다였으며, 여기에 펄이나 모래·석회분 등이 퇴적 및 침전되어 셰일·사암·석회암 등의 퇴적암류로 형성되었다.

그 후 선캄브리아기 말기까지 최소한 세 번 이상의 지각변동과 변성작용이 일어났으며, 그 결과 이들 퇴적 지층이 지리산 대부분을 구성하는 기반암인 편마암 또는 편암으로 변성되었다.

편마암은 수평적으로 매우 치밀하고 단단한 구조이기 때문에 수분이 쉽게 침투하지 못한다. 대표적인 편마암 산지인 덕유산이나 소백산과 같이 지리산에서도 침식과 풍화작용이 활발하지 못해 다양한 암석 경관을 찾아볼 수 없는 아쉬움이 약간 남기도 한다.

그러나 지리산 일대의 편마암은 18억~20억 년 전 정도의 오랜 시간을 거쳐왔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지층 가운데 하나인 영남지괴의 일부이다. 이 편마암이 오랜 세월에 걸쳐 표층에서 수평으로 고르게 침식과 풍화를 받으면 산지 전 사면을 일정한 두께로 돋아, 산행하는 우리들의 발걸음을 부드럽게 해준다.

지리산 형제봉의 나목(裸木). 촬영=윤재훈 기자
지리산 형제봉의 나목(裸木). 촬영=윤재훈 기자

그대가 지리산 천왕봉까지
숨이 치받도록 오르고 싶다면
중산리를 따라 올라도 좋다.
계곡을 건너 숨이 몇 번 헐떡거리도록
용틀임까지 치고 나면
마침내 천왕봉이 보일 것이다.

그곳에서 웅지를 펴고
반야봉 쪽으로 손차양을 하고 바라봐도 좋으리라
산희 샘으로 내려와 목을 축이고,
하룻밤 편안하게 장터목 산장에서 자고
내려와도 좋을 것이다.
그래도 서운하다면 촛대봉, 칠선봉, 형제봉을 지나 서쪽 끝
노고단까지 치달려 가
구례 화엄사 대웅전이나 각황전 부처님 앞에 향불을 사르고,
잠시 명상에 들어도 좋으리라

그래도 못내 서운한 것이 있으며
섬진강 십 리 벚꽃 길을 걷거나,
천 년을 에돌아 나오는 천은사 범종 소리를 듣거나,
지리산으로 치는 노을 빛을 바라보며,
작설차 한 잔 혀끝에 머금어도 좋으리라

쉬 잠이 오지 않거든 선잠에 든 섬진강 깨우는
물소리에 발을 담궈도 좋으리라
섬진물 속으로 떨어진 달을 보거나,
흔들리는 운봉을 보며
한 쪽으로 숨겨진 그대의 마음도 같이 흘려보내도 좋으리라
                       - ‘ 저 멀리 천왕봉이 보인다’, 윤재훈

또한, 선캄브리아기 말기에는 산청·운봉·하동 일대에 어느 정도 규모가 큰 화성활동이 일어나 염기성화성암류(鹽基性火成岩類)가 관입 되었는데, 화성활동이란 마그마가 지표로 분출하는 활동인 화산활동과, 마그마가 지하에서 다른 암석에 관입(貫入)하는 활동인 심성 활동을 말한다. 즉, 지하에서 생성된 마그마가 지각을 꿰뚫고 들어가거나 지표에 분출하여 냉각, 고결되어 화성암이 생성되는 과정이다.

아련한 고생대 시절, 이 땅에는 어떤 생명체들이 뛰어놀았는지 궁금하지만, 초기부터 중기에 이르기까지 지리산은 다시 바다로 뒤덮여 투박한 퇴적 지층이 쌓였다. 그리고 고생대 말기가 되면은 점점 넓은 호수로 변하기 시작하였고, 식물의 잔해인 석탄층이 셰일·사암 등의 퇴적 지층과 함께 두껍게 쌓이기도 하였다.

이들 고생대 지층은 그 뒤 침식작용과 삭박(削剝)작용을 받아 대부분 소멸하여 버렸고, 호남 탄전 지대인 화순탄광(和順炭鑛) 일대에 소규모로 남아 있다. 중생대 초기와 중기에 걸쳐 우리나라에서는 격렬한 지각운동·화성활동·변성작용이 일어났는데 이를 대보조산운동(大寶造山運動)이라 부르며, 지리산 일대도 그 영향권 안에 들어갔다.

지리산 백 년을 누운 고사목. 촬영=윤재훈 기자
지리산 백 년을 누운 고사목. 촬영=윤재훈 기자

그 결과 우리나라의 대부분 지역이 솟아올라 육지로 되었고 지리산 일대도 높은 산지로 변하였다. 대보조산운동 이후 현재까지 약 1억 5,000만 년 동안 계속하여 침식·풍화·융기 작용을 받은 젊은 고생대 지층들은 다 씻겨 없어졌고, 나이 많은 선캄브리아기 암층들만 표층으로 나와 우리가 그 위를 걷고 있다.

지리산을 형성하는 암석은 대부분이 변성암류로서 편마암과 편암으로 나타나며, 이 중 편마암이 거의 전부 덮고 있다고 할 정도이다. 편암은 소규모 렌즈 상으로 편마암에 포위되어 나타나는데, 흑운모편암·석영편암·클로리토이드편암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 결과로 기반암이 적게 노출되어 전체적으로 밋밋하고 평탄한 느낌의 지리산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식생들이 안착하기 쉽고 그 밀도와 영속성이 높아 이렇게 울창한 삼림지대를 이루고 있다.

지리산의 편마암 산지의 식생 피복 상태는 매우 안정적으로 밀도가 높게 발달하였으며, 산죽, 상수리나무, 철쭉, 소나무 등이 극상을 이루고 있다.
또한 개석 산록 완사면의 발달은 미약하며, 능선과 사면에서는 노출된 암석을 거의 볼 수 없는 것이다.

지리산, 초롱꽃을 닮았다. 촬영=윤재훈 기자
지리산, 초롱꽃을 닮았다. 촬영=윤재훈 기자

그러나 계곡 주변과 단애 기저부에서는 소규모의 애추(崖錐)와 암설(巖屑)들이 보이기도 한다. 특히 달궁계곡 및 뱀사골계곡 주변에는 미립물질이 유수에 의해 급사면에서 운반된 30~100㎝ 내외의 중규모 바위부스러기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위와 같은 편마암 지역 사면형태와 피복물의 특징은 암석의 풍화 양상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이렇게 울창한 삼림지대는 건강한 야생생태계를 지니고 있어 야생동물에게 낙원 같은 휴식처를 제공해 주고, 안정된 먹이사슬을 유지하고 살아갈 수 있게 한다. 그러다 보니 자료상 차이가 있겠지만 지리산에는 포유류 41종과 조류 95종을 포함하여 870여 종의 다양한 곤충과 양서류, 파충류가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지리산에는 반달가슴곰(천연기념물 제329호)을 비롯하여 사향노루(천연기념물 제216호), 하늘다람쥐(천연기념물 제328호), 수달(천연기념물 제330호) 등이 살고 있다.

산속에서 라면 맛. 촬영=윤재훈 기자
산속에서 라면 맛. 촬영=윤재훈 기자

지리산의 주 능선에는 15개의 곁가지 능선이 펼쳐져 있고, 그 사이에는 여러 개의 크고 작은 계곡이 발달하여 있다. 주요 계곡으로는 북으로 달궁계곡, 심원계곡, 뱀사골계곡 등이, 남으로는 피아골계곡, 천은사 계곡, 화엄사계곡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산 일대는 해양성기후와 대륙성기후로 분리하는 중간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고도에서 오는 산악성 기후가 뚜렷이 나타난다. 남동쪽 지역에는 빈번한 저기압의 통과와 여름철의 고온다습한 남동 계절풍이 남동 사면에 부딪혀 상승함으로써 발생하는 지형성 강우로 인하여 많은 비가 내린다.

겨울에 산지의 북서쪽은 한랭건조한 북서 계절풍의 영향으로 기온이 낮은 데 반하여, 남동쪽은 산지에 의하여 계절풍이 저지되므로 추위에서 보호되고, 남해를 흐르는 동한난류의 영향으로 겨울에도 비교적 온화하다.

지리산 눈꽃설행, 4월. 촬영=윤재훈 기자
지리산 눈꽃설행, 4월. 촬영=윤재훈 기자

특히나 주 능선을 분수령으로 사면 방향에 따라 기온과 강수량의 차이가 나타난다. 연평균 기온은 남쪽이 13℃, 북쪽은 12℃이며, 여름철 평균기온은 남북사면이 모두 같으나, 겨울철 평균기온은 남쪽이 더 높다.

여름에 남해를 통과하면서 수증기를 잔뜩 머금은 대기가 주 능선의 남쪽 사면에 부딪히며, 지형성 강수를 일으켜 1,600~1,800㎜나 되는 엄청난 양이 내린다. 남쪽 사면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다우지이며 6∼8월에 50∼60%가 내리고, 12∼2월에는 10%도 못 되어 여름철에 강우가 집중된다. 북쪽은 겨울철에 북서 계절풍의 영향으로 많은 눈이 내린다.

한 번 길을 잘못 들면 헤어나기 힘들다. 촬영=윤재훈 기자
한 번 길을 잘못 들면 헤어나기 힘들다. 촬영=윤재훈 기자

특히나 지리산과 같이 큰 산에서는 겨울 산행에 대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어느 해인가 나는 등산화도 신지 않은 채 운동화 차림에 방한복도 제대로 챙겨입지 않고 천왕봉을 오르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아마도 이 산 아래 어디 사는 사람일까?

그러나 산에 너른 품에 안기려면 한없이 겸손해져 산을 닮아가야 한다. 만약에 함박눈이라도 쏟아질 양이면 순식간에 천지는 눈 속에 파묻히고, 세상의 길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단 한 번만이라도 길을 잘못 들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나는 가을 산 늑대(보름달 야간산행) 산행에서도 그런 경험을 자주 했다. 바닥의 낙엽에 싸이면 희미한 달빛과 세상의 여명(黎明) 속에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미련 없이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 가 길이 확연한 곳에서 다시 방향을 잡아 나간다.

그런데 대설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그 길마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겨울 산에서는 반드시 네다섯 시 전에는 사람들 말소리 따뜻한 산장으로 새 새끼처럼 찾아들거나, 하산해야 할 것이다.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쬐그마한 숯덩이만 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 마을 길 끊어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쬐그마한 숯덩이만 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 ‘대설주의보’, 최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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