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스토리박물관17] 소품관:라이브 스트리밍의 원조 ‘테아트로폰(Theatrophone)’...스피커보다 헤드폰이 먼저

정해용 기자
  • 입력 2023.04.04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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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극장폰’ 전화기 중계 방식으로 오페라 공연 중계
전용 카페 모여 같은 음악 따로 듣는 ‘감상실’ 40년 동안 성업
초기부터 스테레오 음향… 20세기 미디어 기술 발달에 큰 영향

포스터 속 여인은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일까. 1896년 일러스트. 퍼블릭 도메인
포스터 속 여인은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일까. 1896년 일러스트. 퍼블릭 도메인

[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1890년대 파리에 등장한 선전 포스터. 그림 속의 여인은 무엇을 하는 것일까. 마치 공중전화를 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화기와는 다른 점이 있다. 입에 대는 송화기 없이 두 귀에 각각 한 대씩의 수신용 폰을 대고 있을 뿐이다.

일명 테아트로폰(Theatrophon; ‘극장 폰’이라는 뜻), 프랑스어로 떼아토푸안느(Thtrophone)라 부르는 음악 감상용 중계기다.

1876년 벨의 전화기가 본격적으로 상업화된 이후 사람들은 소리를 전달하는 이 도구를 다른 용도로도 활용해볼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그 아이디어를 가장 성공적으로 사업에 적용한 발명가는 클레망 아데르(1841~1925)라는 엔지니어였다. 아데르는 당시 프랑스 최초의 동력 글라이더를 설계한 항공학의 선구자로도 유명했다. 그레이엄 벨이 발명한 전화기를 개선하여 1880년 파리에 전화망을 구축한 장본인이다.

아데르는 전화망 구축과 함께 전화전송 기술을 이용하여, 극장 무대에서 공연되는 음악을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들을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다. 이 발명품이 일반에게 처음 공개된 것은 이듬해였다. 미국의 발명왕 에디슨이 거대한 발전기를 들여와 전시장 전체를 대낮같이 밝힌 1881년 8월의 파리 국제전기박람회장에서였다.

1881년에 클레망 아데르가 개발한 테아트로폰 시스템의 설계 개요도. 오페라 무대에서 80개의 송화기로 수집한 음향이 중간 중계기를 거쳐 다수의 테아트로폰 수신기에 스테레오 음향으로 전달되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퍼블릭 도메인
1881년에 클레망 아데르가 개발한 테아트로폰 시스템의 설계 개요도. 오페라 무대에서 80개의 송화기로 수집한 음향이 중간 중계기를 거쳐 다수의 테아트로폰 수신기에 스테레오 음향으로 전달되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퍼블릭 도메인

‘전화 장치를 이용하여 멀리서 극장의 음악공연을 듣는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그저 단순한 전화기 이용에 그치는 기술 같다. 하지만 아데르의 발명품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먼저 오페라 극장 무대 전면에 소리 수집 장치(송신기)를 80개나 설치하여 풍부한 음향을 입체적으로 채취했다. 물론 송신기 하나하나의 성능은 요즘에 비교할 수 없이 원시적인 것이지만, 여러 대의 마이크로폰을 여러 방향에 설치해 입체적 음향을 채취하는 현대의 기술과 다를 바 없다.

이 소리는 하나의 분배기(교환기)에 수렴된 뒤 다시 두 가닥의 전선을 따라 개별 수신기에 전달되었다. 테아트로폰에 달린 두 개의 수신장치(폰)는 바로 소리의 입체감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 1881년에 지금과 같은 스테레오 음향장치가 이미 등장했다.

포스터 속 여인이 두 개의 폰으로 소리를 듣는 모습은 마치 20세기의 이어폰 사용 모습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다만 1백 년 전과 20세기 기술에 큰 차이가 하나 있다. 바로 ‘스피커’라고 부를만한 소리 확대 기술이 아직 없었다는 점이다. 1900년 파리 올림픽에선 볼 수 없었던 경기장의 확성기가 그다음 올림픽 때부터 사용되었다.

따라서 19세기 오페라 무대에서 생생하게 수집된 공연실황을 방송 선을 통해 전해 듣는 사람들은 테아트로폰 수신기를 각자의 귀에 대고 들을 수밖에 없었다. 다양하고 섬세한 용도별 스피커가 등장한 것은 20세기부터의 일이다. 그러니까 스테레오 이어폰이 먼저고 스피커는 나중 기술인 셈이다.

 나무 상자로 만든 테아트로폰 수신기. 퍼블릭 도메인
나무 상자로 만든 테아트로폰 수신기. 퍼블릭 도메인

테아트로폰의 수신기는 나무 상자로 만들어졌고 양쪽에 하나씩의 수신기가 달려 있다. 아직 플라스틱 성형이 자유롭게 이루어지기 전이다. 겉면에 여러 가지 장식들이 부착되긴 했지만 크기나 모양이 투박할 수밖에 없다.

1881년 박람회장의 시연에서 처음으로 오페라 중계를 들어본 당대 문호 ‘빅토르 위고’는 이것이 ‘매우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기록했다. 시제품은 ‘쥘 그러지’ 프랑스 대통령에게 기증되었고, 파리의 부자들과 여유 있는 예술가들은 앞다투어 구입했다. 마치 유선전화를 가설할 때처럼 기사들이 그들의 자택에 수신기를 들고 가 직접 설치해주었다.

물론 아무 때나 폰을 들면 소리가 나오는 것은 아니고, 오페라 공연이 있는 시간에 맞춰 동시 실황중계로만 들을 수가 있었다. 토머스 에디슨의 축음기(미국 1877년), 그레이엄 벨의 그래포폰(1885년), 베를리너의 그래모폰(1888년 독일) 등이 등장하긴 했지만, 극장에서 직접 채집하는 공연실황 같은 음질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녹음 재생을 활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테아트로폰의 인기는 치솟았고, 파리의 중산층은 누구나 그것을 갖고 싶어 했다. 클레망 아데르의 전화회사는 1890년에 ‘테아트로폰 컴퍼니’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본격적인 오페라와 연극 등 공연의 중계 서비스를 시작했다. 가입자 개인의 집에 설치하는 것은 물론, 호텔 카페 클럽 등의 공개된 공간에도 동전을 사용하는 공용 수신기들 설치했다. 오페라 공연이 시작될 때면 음악을 듣고 싶은 멋쟁이들이 카페에 몰려들어 수신기에 동전을 넣고 음악을 들었다.

호텔 로비에 모여 공용 테아트로폰으로 음악공연을 듣고 있는 1890년대 파리지엔들. 퍼블릭도메인
호텔 로비에 모여 공용 테아트로폰으로 음악공연을 듣고 있는 1890년대 파리지엔들. 퍼블릭도메인

테아트로폰 컴퍼니가 본격 영업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이 시스템은 미국과 유럽 각국에도 전파되었다. 1884년 벨기에, 1885년 포르투갈 리스본, 1887년 스웨덴 스톡홀름 등에 이 시스템이 등장했다. 포르투갈에 이 시스템을 설치한 에디슨회사 책임자는 국왕 ‘루이스 5세’로부터 십자군기사에게 수여되는 군사훈장을 받기도 했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도 테아트로폰의 열렬한 이용자였다. 1911년에 서비스에 가입하여 자택에서 이용했다.

테아트로폰 컴퍼니는 연극과 오페라 공연을 중계하는 외에 정기적으로 7분짜리 뉴스 프로그램도 내보냈다. 이것은 유선방송의 프로토타입으로 볼 수 있다. 또 방송을 중계하는 장치들도 이 시스템 덕분에 계속 기술이 향상되었다.

1925년 테아트로폰 컴퍼니의 유선 전송시설. 전화교환수처럼 여러 명의 직원이 기계 앞에 앉아 전송을 원하는 가입자의 유선망에 방송 선을 연결해주고 있다. 장부에 전송 시간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용요금은 이용시간에 비례하여 청구되었다. 퍼블릭도메인
1925년 테아트로폰 컴퍼니의 유선 전송시설. 전화교환수처럼 여러 명의 직원이 기계 앞에 앉아 전송을 원하는 가입자의 유선망에 방송 선을 연결해주고 있다. 장부에 전송 시간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용요금은 이용시간에 비례하여 청구되었다. 퍼블릭도메인

그러나 신기술은 으레 그 기술에 의해 촉발된 후발기술에 의해 수명이 다하는 법이다. 테아트로폰에서 영감을 받은 여러 방송 기술, 특히 스피커의 등장과 무선통신 기술과 결합한 라디오 방송이나 축음기의 발달 등으로 테아트로폰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20세기 미디어 발달에 많은 영감을 제공한 테아트로폰 컴퍼니가 문을 닫은 것은 1932년이었다.

큐레이터 & 도슨트= 정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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