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돌봄의 주체로 성장하다②] 선배시민, 공동체를 돌보다...유해숙 (전)인천시사회서비스원 원장

김남기 기자
  • 입력 2023.09.19 16:11
  • 수정 2023.09.25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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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돌봄의 대상이라는 관점에서, 돌봄을 줄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하는 선배시민운동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돌봄리빙랩네트워크 포럼에서는 노인‧ 환자‧가족의 돌봄 경험과 전문성을 지역사회 돌봄시스템과 연계하는 “시민, 돌봄의 주체로 성장하다”란 주제로 포럼을 마련했다.
포럼의 주요 내용을 발췌 정리하여 연재한다.
연재순서 ① 시민과 함께 지역문제를 해결하다 ② 선배시민, 공동체를 돌보다 선배시민 ‘건강지킴’이 통합돌봄 선봉에 서다 ④ 환자와 가족, 돌봄의 주체가 되다

[이모작뉴스 김남기 기자] 선배시민이란 ‘지혜와 경륜을 바탕으로 지역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고, 공동체와 후배시민을 돌보는 노인으로 공동체의 길을 내는 존재이다.' 선배시민 운동의 선구자인 유해숙 교수는 ’선배시민, 공동체를 돌보다‘를 주제로, 노인이 돌봄의 대상에서 돌봄을 실천하는 주체로서 공동체에서의 역할과 활동을 발표했다.

유해숙 (전)인천시사회서비스원 원장. 촬영=김남기 기자<br>
유해숙 (전)인천시사회서비스원 원장. 촬영=김남기 기자

태산에 부딪혀 넘어지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것은 작은 흙무더기이다.
사람은 산 때문에 넘어지지 않고 오히려 개미 무덤 때문에 넘어진다.
그 이유는 산은 크기 때문에 조심하게 되지만, 개미 무덤은 작으므로 사람들이 조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전국시대 철학자 ‘한비자’

노인은 돌봄의 대상인가? 노인은 돌봄을 받음과 동시에 돌봄을 줄 수 있는 존재이다. 노인은 ‘늙은 사람’이라고 분리해 놓고, 돌봄만 바랄 수밖에 없는 존재인 No人으로 각인시켜 왔다.

은퇴(Retire)에서 인생이모작(Re-tire)으로

유원상 교수(오른쪽)와 로니와 오드리 부부(가운데). 사진=유해숙 교수 제공
유원상 교수(오른쪽)와 로니와 오드리 부부(가운데). 사진=유해숙 교수 제공

제 동생(유범상 교수)이 영국의 탄광마을에 로니와 오드리 부부를 만난 사례를 얘기하고 싶다. 로니는 탄광 노동자였고 오드리는 교사였다. 로니는 퇴직 후 탄광 박물관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진폐증 연구를 위해 로니에게 많은 도움을 구하던 동생은 ‘왜 이런 일을 하냐고’ 물었다.

로니는 'RE-tire'라고 대답했다. 은퇴(Retire)가 타이어를 다시 갈아끼우다(Re-tire)의 의미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우리 삶에 1라운드에 타이어는 누군가를 싣고 달린다. 생존을 위해서 혹은 자식에 대한 책임감으로 달린다. 어느덧 타이어가 낡고 지쳤을 때, 새로 교체해야 한다. 교체된 타이어로 달리는(Re-tire) 인생 2라운드(인생이모작)에서는 이제 본격적인 나의 삶을 위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과 지혜로 후배 시민을 돌보는 일을 하는 것이다.

오드리는 어린이 도서관에서 책 읽어주는 봉사를 한다. 유 교수의 아이가 2살 때 이 마을에 방문 했을 때, 오드리가 읽어주는 책을 통해서 말과 지혜를 배웠다.

그 후 한국에 돌아와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었을 때, 아이는 어느 날 편지를 쓰고, 얼굴이 환해졌다.

"오드리 할머니, 로니 할아버지 7년 동안 한결같이 저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할머니 할아버지 생각만 하면 힘이 나요.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저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만나 뵈러 갈게요."

로니와 오드리 부부의 영향력은 ‘노인이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공동체와 아이를 돌보는 돌봄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빵과 장미’를 달라

캐서린패터슨 소설 '빵과 장미'
캐서린패터슨 소설 '빵과 장미'

내가 누군지 알려면 공동체에서 함께 호흡해야, 
내 가슴이 언제 뛰는지 알 수 있다
- 한나 아렌트(1906년~ 1975년)

독일 홀러코스트 생존자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나의 존재는 공동체가 필수적인 요소이다. 시민이란 자기 목소리로 공동체에 참여하는 의무와 권리를 가진 존재이다.

191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로렌스에서 일어난 파업에서 처음 등장한 ‘빵과 장미’ 구호는 노동자들에게 기본 생존권(빵)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누릴 권리(장미)도 필요하다는 의미로 오늘날까지도 널리 쓰이고 있다.

장미(존엄)를 얻으려면, 빵(생존)이 있어야 한다. 빵을 얻기 위해 가족이 모든 짐을 짓기에는 매우 위험하다. 그래서 국가의 의무로, 시민의 권리로 국가는 시민의 빵을 책임져야 한다.

베버리지 보고서<br>
베버리지 보고서

베버리지 보고서는 영국의 ‘사회보험 및 관련 사업에 관한 각 부처의 연락위원회’ 위원장 W.H.베버리지가 1942년에 제출한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에는 현대사회의 문제점으로 5대 악을 꼽았다. 결핍, 질병, 나태, 무지, 불결을 들었다. 이중 사회보장의 궁극적인 목표는 결핍 해소라고 했다. 보고서는 결핍의 원인으로 실업·질병·노령·사망 등에 의한 소득의 중단을 들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 기본적 수요 충족을 위한 사회보장보험이 마련되어야 하고, 특별히 긴급한 수요 충족을 위해서 국민부조인 국민의 최저생활보장을 제안했다.

베버리지 보고서에 주장하는 것이 바로 사회복지기준선이며, 시민의 사회권과 복지권을 강조했다. 결국 장미를 누리려면은 빵이 안전해야 한다.

인천의 복지기준선. 그래픽=인천시 제공

‘우리 집 장남은 캐나다 총리예요’

캐나다에서 병원에 입원하면, 주차비와 간호사 선물비만 든다고 한다. 그래서 캐나다 노인은 수상이 장남이라는 말이 있다. 매달 노인이 혼자 살면 140만원, 두 분이 살면 300만원이 입금된다. 이처럼 국민이 늙거나 아프면, 국가는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나라는 90년대만 해도 심장병 치료를 위해 4천만원이 넘게 들었다. 사회복지기준선의 변화로 국민의 생활정도는 나아지고 있다.

‘힘내라. 청춘들 우리가 응원할게‘...선배시민 사례

힘내라 청춘들, 실버 바리스타 커피나눔. 사진=유해숙 교수 제공
힘내라 청춘들, 실버 바리스타 커피나눔. 사진=유해숙 교수 제공

복지를 권리로 이해해도 시민이 권력이 없으면 안 된다. 시민의 권력이 시민권이고, 시민권은 공동체로 연대해야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선배시민은 시민권 실현을 위해 공동체에 참여해서 후배시민을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선배시민활동으로 2015년부터 한국노인복지관협회와 선배시민대학, 선배시민 자원봉사자가 함께하고 있다. 그러자 각 복지관의 선배시민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선배시민이 토론하며, 세상을 네이밍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선배시민의 귀와 눈이 열리고, 마음이 동하고, 행동이 달라졌다.

"뒤로 물러나 있는 게 미덕인 줄 알았는데 우리가 이렇게 할 일이 많아요." 선배시민이 노인복지관을 봉사하러 온 아이들에게 "우리를 돌보지 마라. 마을로 가자. 마을에서 함께 주위를 돌보자"고 한다.

우리가 걸으면 길이 됩니다, 진천군 선배시민. 사진=유해숙 교수 제공
우리가 걸으면 길이 됩니다, 진천군 선배시민. 사진=유해숙 교수 제공

진천군의 선배시민은 늘 짐이 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미운 오리새끼에서 백조가 된 것 같아요"라고 한다.

노인일자리사업으로 실버 바리스타 일을 하던 선배시민은 공동체를 돌봐야 한다는 일념으로 '힘내라. 청춘들 우리가 응원할게'라며, 학생들에게 커피를 나누었다.
"라떼(나 때)도 힘들었는데, 너 때도 더 힘들지. 선배들이 응원할게"

성남중원노인복지관은 2012년부터 선배시민이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를 담은 ‘선배시민의 길을 만든다’는 실천 사례집을 냈다. 이 책은 선배시민을 도입하기까지의 고민, 6개의 사회복지사 학습동아리와 19개 선배시민 학습동아리가 중심이 되어 벌이고 있는 구체적인 활동, 실천을 통해 노인 사회복지사들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그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건강동아리 활동으로 경기동수원화성둘레길을 걸으면서 환경 실천에 동참하는 플로깅. 사진=중원노인종합복지관 제공<br>
건강동아리 활동으로 경기동수원화성둘레길을 걸으면서 환경 실천에 동참하는 플로깅. 사진=중원노인종합복지관 제공

성남중원노인복지관의 ‘건강동아리’는 2015년부터 자가 건강관리를 뛰어넘어 공동체 건강지킴이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건강동아리는 체육시설, 미세먼지, 흡연 문제 등 다양한 주제에 맞는 활동으로 캠페인, 공모전 등에 참여한다.

노인복지관의 기능이 돌봄기관에서 커뮤니티센터로 탈바꿈하면서, 선배시민 활동이 후배시민을 위한 마을 공동체로 향하고 있다. 이제 노인이 선배시민으로 후배시민과 공동체를 돌보는 돌봄의 주체로 나선 것이다.

현재는 선배시민학회도 만들어지고, 선배시민협회도 지금 준비 단계에 있다. 그래서 대안(?)노인회도 함께 만들어질 거다. 경기도에서는 지금 선배시민 조례를 입법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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