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시민되다①] 어르신은 왜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야 하나?'...돌봄리빙랩 좌담회

김남기 기자
  • 입력 2023.05.11 17:42
  • 수정 2023.05.1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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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돌봄리빙랩네트워크 정책 좌담회
선배시민, 리빙랩과 만나다

[이모작뉴스 김남기 기자] 초고령사회의 장수가 축복이 아닌 재앙이 될 가능성도 있다. 누구도 뒤에 남겨지지 않는 포용적 돌봄사회로의 전환은 삶을 먼저 경험한 선배이자 돌봄의 주체로서 노인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노인을 보호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변화와 혁신을 만들어 가는 ‘선배시민’으로 인식하고, 활약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

리빙랩은, 선배시민이 성장·조직화하고 주체화되는 공간이자 활동이다. 선배시민은 준비된 시민연구자이면서 민‧산‧학‧연‧관 주체와 함께 돌봄 리빙랩 활동을 진행한다. 선배시민은 사회문제 해결과 지속가능한 돌봄사회로의 전환을 이뤄내는 주체이다. 선배시민의 역량과 활동 영역이 확장되면, 돌봄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의미 있는 대안과 혁신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

제4회 돌봄리빙랩네트워크 정책 좌담회 포스터
제4회 돌봄리빙랩네트워크 정책 좌담회 포스터

한국에자이 주최, 과학기술정책연구원과 돌봄리빙랩네트워크 주관으로 제4차 정책 좌담회가 4월27일 ‘선배시민, 리빙랩과 만나다’라는 주제로 열렸다. 이날 참여한 패널은 ▲김은주 마포희망나눔 상임이사 ▲신명희 중원노인종합복지관 관장 ▲유범상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이고, ▲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사회로 진행됐다.

돌봄리빙랩네트워크 정책 좌담회는 노인을 주체화하는 '선배시민'의 개념, 선배시민 성장을 위한 실험과 리빙랩과의 결합 방안을 논의했다. 이에 본지는 지속가능한 돌봄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정책적·제도적·실천적 과제를 도출하는 열띤 좌담회 현장을 중계한다.


선배시민 활동소개

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촬영=김남기 기자
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촬영=김남기 기자

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오늘 돌봄리빙랩네트워크 정책좌담회는 ‘선배시민, 리빙랩과 만나다’를 주제로 진행한다. 오늘 패널은 다양한 영역에서 돌봄의 주체화 및 지속가능한 돌봄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어떠한 활동을 해 왔는가?

김은주 마포희망나눔 상임이사 성미산마을은, ‘주민들과 함께 사는 세상을 고민’하는 마포의 단체들이 함께 2005년에 만들었다. 지역의 홀몸 어르신과 어려운 아동 청소년을 돌보는 활동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복지 NGO이다. 마포희망나눔은 성미산 마을에서 한 18년째 돌봄과 연결을 통해서 지속 가능한 돌봄사회를 만들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정부 보조금 없이 주민후원과 품 나눔으로 아동청소년 멘토링과 홀몸어르신 돌봄, 문화놀이터 ‘청춘쌀롱’ 운영을 주요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성지은 선임연구위원  ‘청춘살롱’은 어떤 활동인가?

어르신의 문화놀이터 ‘청춘쌀롱’

김은주 마포희망나눔 상임이사. 촬영=김남기 기자
김은주 마포희망나눔 상임이사. 촬영=김남기 기자

김은주 상임이사 ‘청춘살롱’은 지역에 있는 어르신 누구나 함께 와서 어울릴 수 있는 문화 놀이터이다. 지역의 유휴 공간, 낮에는 운영하지 않는 호프집이나 커뮤니티 공간에서 지역의 어르신들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 만나서 신체적, 정신적 건강 프로그램들을 함께하면서 관계를 맺는 프로그램이다. ‘청춘살롱’은 2016년도부터 매주 2시간씩 즐거운 어르신들의 어울림 터로 운영하고 있다.

신명희 중원노인종합복지관 관장 중원노인복지관은 2007년에 개관하고, 2012년도부터 ‘선배시민’ 실천을 해오고 있다. 선배시민을 만나면서 노인을 바라보는 시각, 사회복지를 바라보는 시각에 큰 변화가 있었다. 오랜 시간 노인은 사회적으로 돌봄의 대상이었고, 사회복지의 수혜자였다.

선배 시민은 노인을 돌봄의 대상이나 서비스의 대상이 아닌, 한 인간으로 우리 사회의 시민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복지관은 기존의 서비스제공 중심의 실천에서 토론과 대화를 중심으로 한 자조모임, 노인이 주체가 되어 공동체를 고민하고 열어가는 실천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성지은 선임연구위원 중원노인복지관이 선배시민 활동하게 된 계기는?

복지관 안에서 노인은 청년

신명희 중원노인종합복지관 관장. 촬영=김남기 기자
신명희 중원노인종합복지관 관장. 촬영=김남기 기자

신명희 관장 사회복지 현장에서 우리는 돌봄에 대해 고민을 오랫동안 해왔다. 복지관에 오는 여러 노인은 복지관 안에서 놀랍도록 활발한 청년의 모습이다. 이분들은 당구, 포켓볼 등의 운동을 동료들과 즐기고, 교육도 받고, 다양한 취미와 여가활동을 한다. 하지만, 이분들이 지역사회로 나갔을 때 모습은 바로 노인이었다.

노인이란 말은 부정적인 시각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노인이 어떤 존재인지 현장에서 고민이 있었다. 이때 ‘선배시민’이란 용어를 알게 됐다. 노인을 더 이상 수혜 대상으로 머물게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의미 있는 존재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유범상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 저는 현재 마중물 이사장이며 선배시민학회 학회장이다. 2009년에 만들어진 사단법인 마중물은 산하에 선배 시민지원센터가 있다. 노인을 선배시민으로 규정하고 이론을 만들고, 활동가와 교육을 진행해 왔다. 2022년에 만들어진 선배시민학회는 학계와 현장이 함께 이론과 실천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관련 제도의 영역에서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후배시민지원센터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나눔 교육을 하고 있고, 성인학습자들에게는 세계시민지원센터에서 세계시민, 선배시민, 후배시민을 매개로 시민들의 권리와 지역사회 참여에 대해 교육한다.

성지은 선임연구위원 유 교수는 ‘마중물’의 이사장이다. ‘마중물’이라고 이름을 지은 이유는?

함께 살아가는 지역사회에 마중물이 되자

유범상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 촬영=김남기 기자
유범상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 촬영=김남기 기자

유범상 교수 지하수의 물을 끌어 올릴 때 마중하는 한 바가지의 물이 마중물이다.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고민하는 분들에게, 우리가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되자는 의미로 시작했다.

‘마중물’은, 교육조직가와 실천가들이 모여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또 시민들과 만나서 다양한 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마샘’이라는 서점 카페 갤러리에서는 공부와 연구하는 시민, 지역의 주민들도 있다. 청년에서 노인까지, ‘나는 시민’이라고 인식하면, 누구나가 토론하는 열린 공간이다.


‘노인의 주체화’와 ‘돌봄의 주체화’ 인식

성지은 선임연구위원 ‘노인의 주체화’와 ‘돌봄의 주체화’를 어떻게 인식하고, 현재 상황을 진단해 본다면?

‘내가 할 수 있을 때 돌보고, 필요할 때 받는다’

'마포희망나눔' 김장나눔 행사, 청소년과 선배시민의 소통 현장. 사진=마포희망나눔 제공
'마포희망나눔' 김장나눔 행사, 청소년과 선배시민의 소통 현장. 사진=마포희망나눔 제공

김은주 상임이사 마포희망나눔에서 매주 한 번씩 다른 노인에게 빵을 배달하는 선배시민이 있다. 자신은 수급자이고, 가족과는 단절되어 할 일도, 관계도 거의 없는 분이다. 그런데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한결같이 배달을 4년째 하고 있다. 이 선배시민은 배달을 하면 운동도 되고, 다른 어르신을 만나 인사도 나누고, 아는 사람이 많아져 좋지만, 무엇보다 할 일이 있어 좋다고 한다.

또한 마포희망나눔은 600kg의 김장나눔을 위해 선배시민들과 함께 김장을 담근다. 이처럼 노인은 지역사회에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는 존재이다. 다만 할 거리를 함께 찾아내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 참 어려운 일이지만 해내야 한다.

돌봄에 대한 생각의 전환은 ‘일방적 돌봄이 아닌 상호돌봄’, ‘내가 할 수 있을 때 돌보고 필요할 때 받는다’, ‘물질이 아니라 마음이나 따뜻한 손길도 돌봄이다’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선배시민이 잠재하고 있는 능력, 나누고 돌보려는 마음. 그리고 실제 구체적으로 행동으로 드러나는 모습들을 많이 보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선배시민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도 많지 않고, 선배시민 개개인의 특성을 확인할 수 있는 만남의 기회들이 적다. 이 기회가 충분히 만들어진다면 즐겁게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선배시민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노인이 돌봄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돌봄주체라는 말은 아직 당사자나 주민들에게 낯설게 받아들여진다. 전쟁과 가난을 경험한 노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고, 돌봄 대상자로만 생각한다. 일반시민들은 노인을 꼰대이자 사회적 짐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런 시각에서 탈피해 새로운 인식과 모델을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 90세도 건강하게 사는 노인들이 많다. 하지만, 뭔가 하고 싶어도 노인들에게 일거리를 안 주거나 못 주는 게 현실이다.

선배시민 지역공동체의 일원이 되다

건강동아리 선배시민 4년째 지역사회 정책제안 장려상 수상. 사진=중원노인종합복지관 제공
건강동아리 선배시민 4년째 지역사회 정책제안 장려상 수상. 사진=중원노인종합복지관 제공

신명희 관장 복지관에서 만나는 많은 노인은 처음에는 돌봄을 받으러 온다. 그러면 복지관은 돌봄의 시혜자로 서비스를 제공만 하면 된다. 여기서 괴리감이 생긴다. 어떻게 하면, 노인이 선배시민으로 주체화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한다.

한분 한분의 사연을 가진 노인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고, 어떻게 서비스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 어려운 숙제였다. 다양한 니즈를 가진 노인을 어떻게 하면 선배시민의 권리를 누리게 할 것인가? 큰 숙제였다.

그동안은 획일적인 프로그램으로 판을 벌이고, 홍보하고 모집하고, 한 장소에 모여 강사에게 시간을 할당하고, 설문에서 높은 평점을 받으면 됐다.

노인은 시민으로서 권리가 있다. 그래서 복지관에서는 선배시민의 관점에서 모든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현장에 접목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노인이 열심히 취미와 여가생활을 활발하게 하는 것이 ‘주체화’라고 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했다. 또 빈곤한 분들이 복지관에 왔을 때, 도시락을 받으러 오셨을 때, 줄서서  기다리는 마음은 어떠했을까?

중원복지관은 건강에 대한 욕구가 많으면, 기존에는 노인 운동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진행했다. 선배시민 프로그램에서는 동료들과 함께 시민권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고, 지역사회에 관심을 두고 주변을 살필 기회를 마련한다.

자연스럽게 선배시민은 동아리를 만들어 체육시설도 돌보거나, 지역사회에 개선을 위한 공모에 참여해 정책 제안을 한다. 이 모든 활동은 일방적인 지시가 아닌 선배시민 스스로 토론을 통해 방향을 설정하고 실천해 나갔다.

노인의 주체화, 돌봄의 주체화는, 먼저 본인이 선배시민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나와 동료와 연대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과정이 진짜 주체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돌봄은 권리이자, 나눔이다

선배시민학회 창립일 행사. 사진=마중물 제공
선배시민학회 창립일 행사. 사진=마중물 제공

유범상 교수 돌봄의 주체화가 무엇인가? 저는 이 자리에서 돌봄을 받고 있다. 마이크를 채워주고, 음료수를 주는 것. 테이블에 세팅된 것. 이 모든 것이 돌봄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돌봄이 전혀 굴욕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내가 받아야 할 하나의 권리라고 인식하고, 돌봄을 받으면서 제가 해야 할 역할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돌봄을 받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래서 ‘한 사회가 어떻게 돌봄을 시혜나 동정이 아닌 권리로서 받게 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이 ‘돌봄 주체화의 핵심’이라고 본다. 또한 ‘돌봄을 받는 사람은 다른 공동체에서 돌봄을 나눌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돌봄 주체화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중원노인복지관에 물리치료사가 그동안에는 노인들을 돌봐드릴 때 ‘불쌍하니까’라고 도움을 주었다면, 시민권 개념으로 공부하고 ‘아, 이분들이 이게 권리였구나’라고 인식을 바뀌게 된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돌봄을 받는 것을 권리로 볼 것인가? 시혜로 볼 것인가? 큰 차이점을 가져온다.


‘선배시민’ 육성, 주체화 어떻게 할 것인가?

성지은 선임연구위원 ‘선배시민’ 육성과 주체화를 위해 준비와 아이디어나 실천적 계획이 있다면?

세대의 어울림을 위한 공간 디자인 필요...노인정→마을 사랑방, 어린이놀이터→마을공원

성미산마을 축제 현장. 사진=마포희망나눔 제공
성미산마을 축제 현장. 사진=마포희망나눔 제공

김은주 마포희망나눔 상임이사 성미산마을에서 축제를 열면 때면, 다양한 세대들이 모인다. 선배시민의 노고로 만든 축제 현장은 흥겨운 춤과 노래로 세대 간의 어울림과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어르신들이 아이들한테 건네는 따듯한 한마디. 햇볕이 쨍쨍 내리쬘 때 그늘로 아이의 자리 마련해 주는 손길에서 아이들은 정을 느낀다

성미산마을의 선배시민은 돌봄의 주체로 활동하고 있다. ‘마포희망나눔’의 역할은 이런 기회를 많이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실내외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세대융합 공간 디자인이 확대되어야 한다. 노인정은 마을 사랑방으로, 어린이놀이터는 마을공원으로 꾸며지면 좋겠다.

성지은 선임연구위원 실제로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선배시민의 성장, 조직화로 가는 부분들을 정책적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나?

김은주 상임이사 마포희망나눔에서 작년에 ‘어르신 쉼터’를 조사했다. 어르신이 자주 가는 곳을 주민과 함께 방문해 온라인 지도로 만드는 ‘커뮤니티 맵핑’ 방식으로 진행했다.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갈 곳이 없었다. 앉아 있을 곳도 없고. 유료가 아닌 공간은 없었다. 경로당도 회비를 내야 한다. 결국 집에 있거나 아니면 복지관이나 경로당 외에 갈 곳이 없다. 선배시민의 돌봄의 주체가 되는 것은 활동할 공간을 마련하는 것에 출발한다.

성지은 선임연구위원 유범상 교수가 깃발을 든 선배시민 활동을 신명희 관장은 현장에서 구현하고 있다. 갈 곳 없는 선배시민을 위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가?

선배시민, 토론으로 스스로 문제 해결하다

힘내라 샛별들! 수능전날 예비소집일에 선배시민이 후배시민을 응원하는 모습. 사진=중원노인종합복지관 제공
힘내라 샛별들! 수능전날 예비소집일에 선배시민이 후배시민을 응원하는 모습. 사진=중원노인종합복지관 제공

신명희 관장 복지관에서 오는 선배시민은 ‘청년’과도 같다. 다양한 교육 강좌를 수강하고, 건강을 위한 요가, 댄스 등 문화 여가 활동에 적극적이다. 또한 탁구, 당구, 헬스 등 친구들과 즐기는 모습을 보면, 청년보다 더 활기차고 열정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들이 복지관 문밖을 나갈 때, 복지관 안 청년의 모습과는 다른 사회적 시각에 갇힌 ‘어르신’, 부정적 시각의 ‘노인’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중원노인복지관이 선배 시민에 대한 고민과 실천을 했던 시작점이 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노인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존재인가?’
‘복지관 안과 밖에서 노인의 모습은 왜 다를까?’
‘복지관에서의 노인들의 모습을 지역사회에 알리면, 노인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가 나아질까?’
‘그러려면, 우리 복지관이 지역사회와 함께해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 복지관은 케어센터의 역할에만 충실했다. 사회복지사는 계속 서비스를 만들어서 노인에게 전달하는 서비스 전달자로서 머물렀다. 사회복지사가 먼저 변화해야 한다는 걸 뒤늦게 인식하게 하고, 복지관이 커뮤니티 센터의 역할을 했을 때. 노인이 선배시민으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중원복지관에서 세대소통 ‘소리통’사업을 하고 있다. 1세대, 2세대, 3세대가 일 년 동안 책이나 영화를 소재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각각 토론한다. 이후 삼 세대가 다 같이 모여서 전체토론회를 한다. 전체토론회에서는 청소년은, ‘노인은 그동안 인식했던 꼰대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시민’이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

이렇게 선배시민에 대한 토론의 장이 마련돼야 한다. 그곳이 복지관, 경로당 그 어느 곳이라도 상관없다. 또한 마을 곳곳이 선배시민의 활동들을 담아낼 수 있는 장소가 될 수 있다.

복지관은 노인들만 가는 곳으로 인식돼 있다. 그래서 중원복지관은 노인만이 아니라 시민을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다. 아이들에서 청소년, 청년들까지 복지관에서 활동한다. 예를 들어 노인 합창단은, 청년세대가 참여하는 합창단으로 꾸려져 함께 연습하고 지역사회에서 합창 봉사활동을 한다.

성지은 선임연구위원 리빙랩은 폐쇄된 공간의 실험실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터전을 실험실로 해서 모든 사람이 함께 혁신의 주체로 보는 것이다.

이제는 노인만 주체화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주체화가 되어야 한다. 선배시민이 리빙랩을 만나면서 돌봄의 대상이지만 주체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하고 있다.리빙랩과 선배시민의 만남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는가?

“내가 왜 지갑은 열 되, 입은 닫아야 해?”

선배시민 도서 제주 북콘서트. 사진=마중물 제공
선배시민 도서 제주 북콘서트. 사진=마중물 제공

유범상 교수 흑인은 흑인일 뿐인데 특정한 관계에서 노예가 되고, 여성은 여성일 뿐인데 특정한 관계에서 엄마가 된다. 우리가 갖고 있는 ‘어떤 개개인의 문제들을 사회적 관계 속에서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이 리빙랩의 근본적인 질문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노인은 그냥 시민일 뿐이다. 나이와 지역 등에서 여러 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시민이다. 특정한 관계에서 늙은이가 되거나 어르신이 된다.

우리가 ‘어르신’이라고 부르면, 베이비부머 세대는 몹시 싫어한다. “내가 왜 지갑은 열 되, 입은 닫아야 해?”라고 반문도 한다. 어르신은 현자로서 늘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하고, 연애하면 나이 든 사람이 주책이라고 한다. 우리는 특정한 관계 속에서 늘 노인을 어르신이거나 늙은이로 취급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늙은이는 무기력한 존재이고, ‘노인(No人)’은 사람이 아니다. 노인을 어르신이라고도 부른다. 노인을 높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노인을 대상화하는 것이다. ‘어르신’은 지갑을 열고 입은 닫을 때 완성되는 비현실적인 존재이다.

노인을 ‘No人’과 ‘어르신’에서 시민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 사회가 시민으로 노인을 호명한다는 것은 권리를 갖고 공동체에 참가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노인은 권리와 의무를 알고 자신의 개성과 고유성을 드러내는 이 사회의 나이 든 보통사람이다. 이런 인식의 전환에서 노인의 주체화가 시작된다.


지속가능한 선배시민 활동의 과제는?

성지은 선임연구위원 선배시민 활동이 지속가능한 활동과 큰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 필요한 과제는 무엇인가? 변화가 필요한 정책적·실천적·제도적 요소는 무엇인가?

내가 살던 곳에서 계속 살고 싶다

김은주 마포희망나눔 상임이사 지속가능한 돌봄 사회로 전환의 전제는, 우리가 모두 돌봄의 주체이자 객체이고, 내가 돌봄을 필요로 하고, 돌봄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현장에 가까이 있는 사람이다.

성미산마을은 이 점에서 교육과 공동체로 시작한 지 30년 됐다. 성미산 마을은 필요한 것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활동을 이어왔다. 안심하고 안전하게 ‘내가 살던 곳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은퇴하거나 은퇴를 준비하는 나이가 되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노후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지금은 사회적인 안전망이 취약하다. 그래서 성미산마을은 50대에서 70대 사이의 마을 주민들이 모여, 우리가 살고 싶은 노후를 함께 만들려고 계획하고 있다. 참여의사를 물으면 다들 반가워한다.

나를 인간으로 대해 주는 사람과 선배시민으로 인정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스스로 변화한다. 다만, 변화의 기회에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는 것뿐이다. 기존의 관행, 사회적 시선이나 본인이 살아왔던 패턴대로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선배시민 교육을 통해 구체적인 활동계획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경기도 의회 선배시민 조례 추진

신명희 관장 복지관에 20개 선배시민 동아리를 연합해서 만든 ‘선배시민위원회’가 있다. 선배시민과 함께 올해 연합 활동을 고민하고 있다. 21년 첫해 위원회가 만들었을 때, 전국 환경챌린지를 했었고, 작년은 코로나로 힘든 지역사회와 후배 시민들을 위해서 ‘힘내라 시리즈’를 했었다.

올해는 ‘선배시민 박람회’를 준비 중이다. 선배시민들의 다양한 활동을 알리고, 노인이 돌봄의 대상이 아닌, 돌봄의 주체로서 지역사회에서 어떠한 활동을 했는지 알리고, 동료들과 시민들과 함께 선배시민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눌 수 있는 광장을 마련한다.

경기도 의회는 선배시민 조례를 만들기 위해 선배시민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선배시민 활동이 리빙랩활동의 일환으로 선배 시민 활동의 실험을 하는 단계이다. 지속가능한 선배시민 활동이 되려면, 제도나 법적인 보완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상에서 선배시민이 토론하고 논의할 수 있는 광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선배시민을 지원할 수 있는 센터도 만들어져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시민권은 노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대의 영역에 아우르는 형태로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는 전국 노인복지관에서 선배시민을 실천하고 있다. 선배시민은 노인을 위한 사업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시민권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사회복지를 넘어 시민사회 전체로 확대되어야 한다.

“저희를 인간 취급해 줘서 고맙다”

유범상 교수 제가 선배시민을 만나서 강의하다 보면 “저희를 인간 취급해 줘서 고맙다”고 한다. 함께 박람회도 가고 지역사회에서 토론하면 선배시민은 스스로 인간 취급을 받는다고 느낀다. 노인들이 취미나 영화나 즐기는 존재라고 생각해서, “어르신, 여기로 오세요. 여기 앉으세요. 빵 갖고 가세요” 이 단어가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의 단어 이상을 넘어서지 않는다.

우리는 그동안 노인을 빵의 결핍이 있는 대상으로만 봤다. 장미도 필요한 인간이라는 것. 그리고 시민으로서 권리를 갖고 있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다는 것에 “내 존재가 그런 존재였어?”하고 자부심을 느낀다.

“난 그냥 죽을 때까지 내 건강이나 지키면서 죽을지 알았는데, 지역사회에 내가 할 일이 이렇게 많은 존재였던 것이 당연한 권리였던 거야”

그동안 중원노인복지관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 <우리가 선배시민의 길을 만든다>는 책에서 “상상이 일상이 되도록 마을에서 실천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저와 중원노인종합복지관 사회복지사들이 함께 만들었다. 선배시민의 동아리활동과 교육을 통해 “그래, 상상은 누구나 할 수 있는데 그게 현실로 가능해?”라는 의문에 대한 활동 내용 등을 담았다.

리빙랩 활동도 상상이 필요하다. 그동안 리빙랩의 주체가 ‘관’이나 ‘활동가’들이었다. 그래서 시민 없는 시민운동은 있을 수 없듯이, 리빙랩은 참여자 모두가 각자의 개성과 다양성과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체를 이야기하고, 지역사회에서 우리 삶을 바꾸고자 하는 상상을 실현하는 실험실을 만들 수 있다.


선배시민 활동가의 꿈과 비전

성지은 선임연구위원 ‘선배시민, 생활 실험실을 만나다’ 이 주제는 정말 뜨거운 열기와 가슴으로 진행하는 좌담회이다. 그래서 오늘 토론자의 꿈과 비전을 듣겠다.

김은주 상임이사 사회변화에 대한 꿈을 가지게 된 계기는 유범상 교수의 수업을 들었기 때문이다. 유 교수의 수업에서 ‘시간은 오래 걸려도, 결국 역사는 변화, 발전한다’는 것에 감명받았다. 마포희망나눔에서 뒷걸음질 칠 때도 있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차츰 변화하는 마을의 모습을 보곤 한다.

제 주위에 살고 있는 이웃들, 가난하든 부유하든 혼자 살든 여럿이 살든 그런 이웃들이 함께 지역에서 안심하고 살아가는 마을. 나도 그 속에서 이웃을 믿고 살아갈 수 있는 마을을 만드는 꿈을 가지고 있다.

신명희 관장 저는 올해 26년 차 사회복지 일을 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장애인복지 현장에서 일을 했었다. 그때 만났던 사람들을 지금도 만나고 있지만, 그분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선배시민이라는 시민권을 만나면서 저는 사회복지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됐다. 선배시민을 만나면서 처음 나의 노년을 상상했다. 그동안 많은 노인을 만나왔지만, 스스로 ‘노인을 부정하고 싶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어떤 노인으로 늙어가야 할까?’ 시민권이 조금씩 성장 발전하고 공동체에서 이야기된다면, 나와 미래세대에 풍요로운 시민으로 살아가는 꿈을 꿀 수 있다는 생각에 일하고 있다.

유범상 교수 저는 희망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좋은 세상을 꿈꾸지만, 어려움을 겪을 때 스스로 위로하는 말이 있다.

다람쥐가 겨울에 먹으려고 도토리를 따다가 땅에 묻어둔다. 그런데 다람쥐는 머리가 나빠서 어디다 묻어뒀는지 잊어버린다. 다람쥐가 잃어버린 도토리는 상수리나무로 자란다.

나는 수많은 시민 교육을 하고 학생들을 교육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이 사람들이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주위를 둘러보니 그분들이 상수리나무가 되어 돌아왔다. 오늘 김은주 상임이사와 중원노인복지관 신 관장이 그런 분이다. 그래서 제가 깨달은 것은 눈에 안 보일 뿐이지 내가 뿌린 씨앗은 어디선가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우화로, 모소 대나무는 4년 동안 안 자란다. “저 녀석 뽑아야 하는데 왜 저렇게 안 자라지?” 했는데 5년이 되자 6주 만에 25m를 자란다. 5년간 모소 대나무는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우리 눈에 안 보일 뿐이지 사회는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4회 돌봄리빙랩네트워크 정책 좌담회 단체 사진. 촬영=김남기 기자
제4회 돌봄리빙랩네트워크 정책 좌담회 단체 사진. 촬영=김남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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