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도로를 달리다가 눈길을 확 끄는, 우뚝 선 느티나무를 만났다. 남편은 한 치도 망설이지 않고 핸들을 꺾었다. 멀리서도 그 아우라가 만만치 않았는데, 가까이에 와 보니 더욱 더 가슴이 벅차오른다. 화순 이서면 야사리의 느티나무 한 쌍이다. 쌍둥이 느티나무는 보면 볼수록 생동감 넘치는 데칼코마니 작품이다. 수령 400여 년의 고목은 마을의 당당한 수호신이요, 당제를 모시는 당산나무이기도 하다.나는 절로 옷깃을 여미고 우람한 나무들을 둥치에서부터 우듬지까지 훑어본다. 허공에 쫙 펼쳐진 쥘부채가 따로 없다. 둥치가 서로 단단히 붙어 있
시골집에 살고 계신 친정어머니가 홀로 생일을 맞이하면 안 될 것 같아 며칠 전에 막내딸인 인자씨가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로 왔다. 노모는 제일 마음 편한 막내 인자씨 집에 며칠째 묵으면서 두 아들과 다른 두 딸을 보고 싶어 했다. 인자씨는 큰언니인 숙자씨에게 전화해서 어머니 생일 점심때 장어구이를 먹으러 교외로 가자고 했다. 여름을 보내느라 부쩍 기운이 떨어진 88세 노모에게 보양도 해드리고 꽤나 뜨악해져버린 언니와의 만남도 주선할 참이었다.그런데 큰언니 숙자씨의 병이 또 도졌다. 이번에도 한사코 어머니를 만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한여름의 새벽은 해가 중천에라도 오른 듯 훤하다. 오늘 하루도 얼마나 더 열섬 속에서 허덕여야 하는가. 어젯밤은 열대야에 지구촌의 가슴 아픈 뉴스들까지 쏟아져 잠을 설쳤다. 아프카니스탄과 아이티의 참상. 가슴이 답답해 서성이는데 뜻밖의 초록이 눈을 간질인다. 유리 꽃병에서 피어나는 싱싱한 이파리들. 고구마순이다. 고구마순이 며칠 사이에 몰라보게 풍성하게 자랐다. 고구마 두 개가 피워 올린 싱그러운 초록 세상이다. 할아버지 수염 같은 하얀 잔뿌리들은 부지런히 단물을 빨아올리느라 여념이 없다. 그렇다. 더위는 더위이고, 지금은 녹음방초
12시에 만나요~ ‘부라보콘’[이모작뉴스 김남기 기자] 러브마크 브랜드 스토리는 역사가 깊고 소비자로부터 사랑받는 브랜드를 재밌는 에피소드와 함께 소개한다. 러브마크 브랜드 네 번째는 12시에 만나요~ ‘부라보콘’편이다.부라보콘 가격 1970년 20원 현재 1500원 안팎 ‘12시에 만나요’로 시작되는 CM송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부라보콘은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흥얼거렸을 이 노래는 통기타로 대변되는 포크음악이 유행하던 시대적 배경과도 연결된다. 윤형주·윤석화가 노래를 불러 큰 성공을 거뒀다.장덕현 해태제과 마케
손이 가요~ 손이 가~ 농심 '새우깡'[이모작뉴스 김남기 기자] 러브마크 브랜드 스토리는 역사가 깊고 소비자로부터 사랑받는 브랜드를 재밌는 에피소드와 함께 소개한다. 러브마크 브랜드 세 번째는 손이 가요~ 손이 가~ ‘농심 새우깡’편이다.‘소비자 심리지수’는 생활형편이나 물가상황들을 알아보는 지수이다. 이 지수에 영향을 끼치는 제품들이 있다. 과자시장에 부동의 1위 제품인 농심 새우깡이 “800원에서 1000원으로 올랐다“면 소비자들 반응은 어떨까?” 왜 이렇게 물가가 올랐어“하고 대답할 것이다. 이렇게 새우깡은 소비자 심리지수에
올해는 봄 가뭄 소리가 쏙 들어갔다. 해마다 가뭄이 들어 저수지가 바닥을 보여 모내기가 어렵다고 아우성이더니 올봄은 때맞춰 비가 충분히 내린다. 비를 맞은 앞산은 하루가 다르게 푸르게 솟아나고 베란다의 화초도 저마다 꽃을 피우느라 바쁘다. 햇살 맑은 아침에 베란다에 나와 앉아 있으면 어디 멀리 여행이라도 온 기분이다. 라디오에서 흐르는 바이올린의 선율이 감미롭다.CBS FM 음악방송은 아침 9시부터 클래식 타임이다. 클래식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라디오 채널이 맞는 방송이 오직 그뿐이어서 듣기 시작한 지 스무 해가 넘었다. 그 시간에는
55세 경호씨는 요즘 편의점 알바생이다. 일반 사무직으로 중소기업에서 일찍 퇴직을 하고 나니 기술도 주특기도 없는 악조건이라 일을 하고 돈을 벌려면 창업을 해야만 하는 형편이었다. 창업 설명회다, 스타트업이다, 이곳저곳 기웃거리기는 했는데 자본금이 적은 처지라 아직 모색 중이었다. 마침 편의점을 운영하는 친구로부터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야간알바를 해줄 수 있겠냐는 연락이 왔다. 편의점 점주라면 사장님임은 분명하지만 실상은 본인과 가족과 알바까지 동원돼야만 제대로 돌아가는 게 24시간 편의점이었다.밤에 야간영업을 도와주던 친구의
영옥씨의 친구들이 모두 감정적으로 집단반발과 가벼운 우울 상태에 빠졌다. 영옥씨는 1960년생이고 친구들도 거의 동갑으로 작년에 환갑을 지냈다. 요즘 환갑이면 청춘이라 환갑잔치는 어울리지도 않는다며 입에 올리지도 않았고 신중년이라는 새로운 세대 구분으로 마냥 젊은 나이인 듯 살아오지 않았던가. 코로나만 종식되면 히말라야 원정대라도 꾸릴 기세로 건강한 그룹이 영옥씨 친구들이었다. 게다다 UN이 인생 100세 시대를 맞아 새로 발표한 연령분류 기준표에 의하면, 18세~65세는 청년, 66세~79세는 중년, 80세~99세는 노년이래서 아
윤시달(尹時達)씨는 반지하방 구석에 놓인 화장지 겉면의 선전 문구를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잘 풀리는 집'이라고라? 감었으니께 풀리겄제, 뭔놈의 그것도 광고라고 참.생각이 워낙 많은 위인인 윤시달은 지난 해 11월 수능 며칠 전 일이 생각난다. 수능을 치는 옆집 고3 아이에게 문제를 잘 풀라고 잘 풀리는 화장지를 갖다 주었다는 아내의 자랑에, 늘그막에 무슨 요즘 아그들 식 이벤트를 하느냐고 핀잔을 주었던 것.시달씨야 타고나기를 워낙 선물에는 취약한 체질이어서 60평생 누구에게 이렇다 할 선물 한 번 해본 적이 없는 주
종호씨에게 오랜 친구들과의 산행은 언제나 즐겁다. 매달 첫 번째 토요일과 세 번째 토요일 오전에 만나 3~4시간 산행을 마치고, 하산해서 마주앉는 점심식당. 그 자리에서의 막걸리 한 사발이면 주중에 쌓였던 피로와 고민이 한 번에 사라져버리는 마법이 가능했다. 산행 중에는 어떤 얘기를 해도, 혹은 아무런 말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은 편안함이 깃든 친구 사이였다. 대모산, 청계산, 북한산, 아차산 등 서울 근교의 산을 번갈아 다니는데, 오늘은 싱그러운 연두색 나뭇잎이 지천인 남한산성 둘레길을 걷고 내려와서 버스 종점 부근에서 유명한 삼겹
엄마! 꽃 받으세요.아들이 덥석 내 가슴에 꽃다발을 안긴다. 웬 꽃다발? 눈이 부시다. 탐스러운 하얀 수국에서 터져 나오는 백색 빛. 곁에 낀 연분홍 장미들도 탐스럽지만, 일단 빛깔에서 뒤로 밀려나고 만다. 아들이 선배 결혼식에 가기 전에 내려놓은 제 식구들을 데리러 왔다. 그러니까 행복과 사랑이 넘치는 결혼식장의 꽃이 나에게까지 온 것이다. 나는 저절로 입을 벙긋거린다.아유, 넘 예쁘네. 나보다는 승미한테 줘야지?아니에요, 어머님. 전 괜찮아요.며느리가 미소를 지으며 손사래를 치는데, 아들이 걱정 말라고 한다. 꽃다발을 두 개나
Y씨는 골방 천정이 닿을 정도로 쌓여있는 농구공들을 바라보자니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Y씨는 평생을 농구공 제조업체에서 잔뼈가 굵었으나 그놈의 코로나가 웬수지, 각종 농구경기도 덩달아 시들해지고 농구공이 잘 팔리지 않으니 하는 수 없이 나이순으로 희망퇴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해외수출에 공헌하여 무역의 날에는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농구공 제조업체 (주)하이바스키코리아는 퇴직자들에게 기념으로 농구공을 나눠주는 퍼포먼스를 하곤 한다. 사장이 워낙 농구를 좋아한 이유도 있으나 그럴싸한 영문으로 된 회사 이름 치고는 매우 영세한
요양원 문을 들어서는 발걸음이 마음의 추가 발에 달린 듯 늘 무겁기만 하다. 인숙씨의 친정어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가신지 벌써 3년이나 되었다.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작은 요양원으로 어버이날이라고 창문 너머라는 조건으로 특별 면회가 허용되었다. 코로나로 저번까지는 요양원 사무실에서 전화로 음성만 듣고 필요한 물건을 전해주는 정도에 그쳐 아쉬움이 너무 컸다.직장인과 대학생인 인숙씨의 딸과 아들은 어버이날이라고 꽃바구니와 요즘 유행한다는 용돈박스를 선물로 주었다. 인숙씨는 어버이날이 올 때마다 자신이 낀세대임을 절감했다. 선물을 주는 자녀와
싫어, 싫어. 지금 집에 안 가. 더 놀다 갈 거야. 아빠, 빨리 점퍼 벗어!녀석은 점퍼를 입고 나서는 아들을 흘낏거리며 벌렁 대자로 누워 시위를 한다. 기세가 만만찮다. 치켜뜬 눈에, 불끈 쥔 앙증맞은 손과 발은 쉴 새 없이 거실바닥을 쿵쿵 친다. 떼쓰는 모양도 어쩌면 저리 귀여울까. 저절로 웃음이 난다. 우리 부부는 녀석의 존재만으로도 이미 행복의 극치에 이르렀다. 녀석도 할아버지 할머니와 노는 재미가 꽤 쏠쏠했던가 보다.남편은 더없이 자애로운 할아버지다. 억지로 데려가지 말고 이해를 시켜야 한다며 녀석을 꼭 안고서 말문을 연다
Y씨는 어릴 적부터 개를 워낙 좋아해서 정년퇴직 후에도 개만 보면 어쩔 줄 몰라 한다. 뿐만 아니라 복날이면 곧잘 듣게 되는 "개 혀?"라는 사투리식 우스갯소리도 세상에서 제일 못돼먹은 막말로 생각할 정도다.그러던 어느 봄날, Y씨는 우연히 이모작투모로라는 인터넷매체에서 "반려동물 전문가. 치매예방 지도사 양성과정"이라는 광고를 접하고 반색을 했다."하기사 동물도 치매가 올 수 있겄제잉. 반려동물 치매예방 지도사라고? 요것이야말로 나한테 딱 맞는 일이구먼 흐흐."곧바로 Y씨는 광고에 적힌 안내전화를 돌렸다."에또~. 그곳이 페트 스
러브마크 브랜드 스토리는 역사가 깊고 소비자로부터 사랑받는 브랜드를 재밌는 에피소드와 함께 소개한다.오늘은 콜라브랜드의 1, 2위를 다투는 오랜 숙적 코카콜라와 펩시의 브랜드 100년 전쟁 2편 ‘실패한 마케팅’ 편이다.코카콜라의 망한 브랜드 ‘뉴코크’ [이모작뉴스 김남기 기자] 1980년대 코카콜라 브랜드 ‘뉴코크’는 가장 비싼 값을 치루고 단명한 망한 브랜드이다. 일명 ‘코카콜라의 귀환’ 스토리이다.코카콜라는 80년대 중반 까지만 해도 전 세계에서 콜라시장의 60%를 차지했다. 그런데 갑자기 24%대로 떨어지게 됐다. 바로 펩시
사위가 집에 왔다. 아니 결혼한 딸과 사위와 외손자가 같이 왔다. 결혼하고 딸이 빠져나간 방이 썰렁하게 느껴졌던 것도 잠시, 어느새 식구가 불어서 세 사람이 들어설 때는 현관 입구부터 떠들썩했다. 돌이 막 지난 손자는 역시나 아빠 품에 안긴 채 집으로 들어선다. 아기를 안은 사위의 자세가 아주 자연스럽다. 아기가 울자 사위가 가방에서 분유를 꺼내 역시나 익숙하고 차분한 동작으로 먹인다. 그때 딸은 무엇을 하나 봤더니 제 엄마랑 한갓지고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다. 외손주가 생긴 뒤, 주말이면 형석씨의 집에서 늘상 보는 장면이지만
평생 한 직장에서만 아까운 청춘을 하얗게 불태웠던 쉰일곱 소판돈씨는 희망없는 희망퇴직을 하고보니 억울도 하거니와 나머지 인생을 집에만 앉아서 얼마 되지도 않은 퇴직금을 곶감 빼먹듯이 할 수는 없어서 피시방이라도 차릴 요량을 하게 되었다."무엇보다 간판 상호가 중요하다던디?"판돈씨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용한 점쟁이를 찾는 심정으로 용당나루터 길목에 폼잡고 있는 '백운 허영무 작명소'를 찾았다. 그곳은 작명이 주종은 아닌 듯 "궁합 택일 사주 관상도 봅니다"라고 뻘건 글씨가 적힌 입간판이 좀 거슬렸다.'작명만 하는
저기다, 이제 다 왔다. 용인의 한 자연휴양림에 들어선 정미씨는 숲속의 통나무집 앞에다 차를 세웠다. 통나무집 문 앞에서 87세의 노모가 합죽이 웃으며 정미씨를 반가이 맞아준다. 언니가 세 자매와 친정어머니가 1박2일 동안 숲속 통나무집에서 먹을 음식을 그야말로 바라바리 준비해가지고 왔다. 지금 정미씨의 나이 55세, 언니는 두 살 위고 동생 은미는 53살로 두 살 아래이다. 세 자매가 모두 50대로 갱년기를 겪을 나이인데 엄마가 계시니 그 앞에서는 내색을 못하고 그냥 ‘젊은것’이 되는 묘한 경험을 하고 있다.
소년은 자기보다 두 살 어린 명자(明子)를 좋아했다. 봄날 언덕에서 하얗토록 삐비를 뽑으면서도 집 모퉁이에서 사금파리 놀이를 하고 있을 명자를 생각했다. 명자네는 너무도 가난해서 누구하나 그 집 사람들과 섞이려 하지 않았으나, 소년은 토굴처럼 생긴 명자집 모퉁이를 지날 때면 마음이 설레었다.그 봄날도 그랬다. 소년은 삐비를 따서 한 움큼 쥐고 동네로 내려오자 실바람 속에 무슨 예감처럼 붉은 내음이 가물거렸다."동백은 벌써 지고 없는디? 워디서 저런 빨간 꽃이 보이까잉?"소년은 허물어져가는 명자네 흙담벽 사이로 새색시의 붉은 치맛자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