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노인이 부축받으며 문 앞에 나타나자 1등 칸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은 누가 시키기라도 한 듯 모두 좌석에서 일어섰다. 통로에 서있던 사람들은 모자를 벗었다. 노인은 답례로 인사했고, 제복을 입은 역장과 한 남자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기차에서 내렸다. 역에 있던 사람들이 역장의 사택 현관까지 그를 모셔갔다. 11월을 하루 앞둔 러시아 아스타포보의 공기는 칼날처럼 차가웠다.노인이 침상이 준비되길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동안, 한 신사가 큼직한 가방을 들고 들어섰다. 철도청 외래진료소의 의사인 스
나는 조각을 숲에서 나무들을 바라보며 배웠다.들판에서 떠다니는 구름을 보며 배웠다.작업실에서 모델들의 몸을 연구하며 배웠다.… 미술학교를 제외한 모든 곳에서 배웠다.- 오귀스트 로댕 “travailler, Toujours travailler(일하시오. 계속해서 일하시오).” [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조각가 로댕(Auguste Rodin, 1840~1917)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은 ‘일하라’였다. 명사형으로는 ‘작업’이란 뜻이다.그가 인류에게 남긴
미지의 빛 'X'를 보다[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1895년 11월 8일 금요일. 음극선관을 통하여 전자와 빛의 작용을 연구하고 있던 뢴트겐은 완벽하게 마분지로 둘러싼 음극선관으로부터 알 수 없는 빛이 나와서 어둠 속의 감광지에 형광 반응을 일으키는 것을 목격했다. 종이를 뚫고 나오는 빛.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백금시안화바륨을 바른 감광지에 분명히 반응을 일으키는 광선. 뢴트겐은 이를 무심히 넘기지 않고 실험과 관찰을 거듭하였다. 분명히 무언가가 있었다. ‘이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니 우선은 X라고 이름
[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그의 조상은 대대로 고급가구를 만든 솜씨 좋은 장인(匠人)들이었고, 외가 쪽은 상업에 능한 사업가들이었다. 프로이센(독일)과 네덜란드가 맞닿은 라인강 하류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라인강(Rhine)의 큰 줄기는 스위스 남동부의 알프스의 산 호수에서 시작돼 독일과 프랑스의 경계를 지나고, 독일 서부를 북쪽으로 내달린 뒤 네덜란드 영토를 거쳐 북해로 흘러든다. 하구 건너편에 멀리 브리튼 섬(영국)이 있다. 강의 길이는 한반도 삼천리보다 긴 1,320km. 여기에 각국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수많은 지류. 모젤강.
안달식(70)은 늙으막에 G군청 문화관광과에서 마련한 무료 유튜브 제작 강습회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다니는 재미가 쏠쏠했다. 뭐 별로 눈에 띄는 콘텐츠도 없는 황망례 할머니와 손녀가 만든 유튜브 채널이 구독자가 100만명에 달하고 한 달 수입이 수천만 원이 넘는다는, 강사의 설명을 들은 날부터 달식에겐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내가 인생을 헛살았어. 오냐 좋다! 나도 너튜븐가 물놀이용 튜븐가 맹글어서 돈 좀 벌어보자!"달식은 혼자 된 지 꽤 된 마당이라 동영상을 함께 찍고 노닥거려줄 환상의 콤비를 구하는 일이 문제였다. 몇날 며칠
[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20세기 인류의 문명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주요 코드중 하나는 노벨상이다. 지난 세기 역사와 과학기술의 중심에 있던 인물들 대다수는 노벨상 수상자 명단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세기말 세계 최대의 갑부 중 한 사람인 알프레드 노벨은 죽음을 앞두고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했다. 그는 한 해 동안 인류에게 가장 큰 이익을 준 사람들에게 상을 주도록 유언을 남겼다. 노벨상은 1901년부터 1, 2차의 세계대전 기간을 제외하고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물리, 화학, 생리‧의학, 문학, 평화 등 다섯 부문에서 공적이
자유의 선물인 흡연권이 왜 유독 여자에게만은 마음 졸이며 숨겨야 하는 비밀스러운 행위였을까? 남자들에게는 그저 단순한 기호품일 뿐인 담배가 왜 여성에게는 무언가 이유와 의미를 대야만 하는 존재로 탈바꿈하는가?차를 마시지 않는 나라 [이모작뉴스 고석배 기자] 동아시아 가운데 조선은 유일하게 차를 마시지 않는 국가다. 차는 손님을 맞이할 때 중요한 사교의 수단이었는데 조선에 차 문화가 없었고 대신 술을 내왔다 한다. 과연 술을 좋아하는 민족이었다. 그러다 담배가 들어왔다. ‘대객초인사 식후제일미’라는 말이 널리 퍼
발사위가 신중하다. 조심조심 앞으로 나아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가 하면 슬며시 뒤로 빠진다. 그리고 소리 없이 빙그르르 돈다. 더없이 경건하다. 스님들은 회색장삼에 갈색가사를 걸치고 그 위에 백색 적색 황색 녹색의 띠를 둘렀다. 그 화려한 차림새에 고아한 발사위가 참 잘 어울린다. 어느 틈에 머리 위로 올린 양손이 활짝 펼쳐지면서 바라도 양쪽으로 나뉜다. 바라에 달라붙은 한 줌 햇살이 눈부시게 반짝인다. 오른손 바라가 회전하며 먼저 내려오고, 뒤따라 왼손의 바라도 내려온다.극락전 앞마당에서 네 명의 스님들이 승무 공양을 올린다
남자들은 이른바 노예를 갖기 위해 여자와 결혼한다. 여성들은 이름도 없다. 이들은 없는 존재로 치부되며, 이들에게 적용되는 법도 없다.그녀들의 유일한 친구는 담배 파이프인 것처럼 보인다.- 조선, 1894년 여름, 에른스트 폰 헤세 바르텍 (오스트리아). 조선여행기 중에서[이모작뉴스 고석배 기자] 옛날 옛적 호랑이도 담배 먹던 시절은 언제인가? 담배의 원산지 아메리카에는 호랑이가 없으니 한국에 담배가 처음 들어온 때로 어림잡아 본다.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에는 담배가 1618년에 전래하였다고 기록됐다. 호랑이
유럽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벨 에포크 (Belle Époque). ‘아름다운 시절’이라 번역되는 이 프랑스어는 20세기로 들어서는 유럽의 한 시대를 표현하는 말로 널리 알려져 있다. 100년 뒤 홍콩에서 ‘화양연화’(花样年华, 2000년)라는 제목의 영화가 나왔던 일을 생각하면 흥미로운 일이다. 절정의 인생이거나 시대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같은 뜻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벨 에포크’는 한 개인
올해 다같이 59세가 된 영숙씨의 고향 친구들은 모이기만 하면 이질적인 자식 세대의 행태를 이야기하느라 대부분의 모임 시간을 보냈다. 맛집 앞에 몇시간이고 줄을 서고, 결혼 전에 남녀가 거리낌 없이 같이 여행을 가고, 명품백이나 신발을 사려고 혹은 되팔려고 백화점 앞에 줄을 서고, 어디서나 SNS에 올릴 사진 찍기에 열을 올리는 행태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데서 시작해서 아들딸이 결혼을 한 친구들은 또 그 달라진 결혼 풍경에 열을 올렸다.아들네 집에 가면 왜 아들이 늘 집안일을 하는지, 딸네 집에 가면 사위가 주방일을 하는
과학관 : 라이트형제 최초의 비행기[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태초부터 인간에게 있어 하늘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신(神)이 머무는 곳이고, 고통 없는 이상향(하늘나라)이 존재하는 곳이고, 가장 위대한 신화적 존재들이 구름을 타고 내려온 곳이다. 위대한 제왕(천자)과 성인들은 으레 하늘님의 아들이거나 사신(천사)으로 떠받들었다.나아가 사람들은 그런 하늘로 직접 날아오르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은 수천 년의 전설과 신화들에 끊임없이 반영되어 나타났다. 그리스 신화 속에는 날개 달린 말을 타고 하늘을 나는 영웅이라든가, 새의 깃털을 붙여 만
K시에 사는 Y씨(63세)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러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하나같이 뭐 찢어지게 가난하던 어린 시절, 눈만 뜨면 들로 산으로 함께 싸돌던 불알친구들 아니던가!서울 강남 신사동에서 수십 년 만에 만난 동무들은 어릴 적 땟국에 절은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모두 개기름이 잘잘 흘렀고 큰 차들을 끌고 나타났다. 정말 서울이 좋긴 좋은 모양이라 생각하며 꿈에도 그리던 녀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옛날로 돌아가 '불타는 까망돈' 삽겹살집에서 왁자지껄 그동안의 회포를 풀었다.Y씨는 비록 K시 대왕시장통 한켠에서
과학관 : 영화의 탄생...뤼미에르 ‘60초 영화’에서 할리우드까지[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1900년 무렵의 유럽 문명의 가장 화려한 정점은 파리였다고 말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 무렵에 시작하여 20세기 내내 파리는 당대 인류의 문화수도와도 같은 곳이었다. 문학, 회화, 무용, 건축, 문학, 음악 등 전통예술의 정상급 예술가들과 이들에게 배우려는 지망생들이 몰려들어, 파리는 문화예술과 과학기술 그리고 인문학과 정치외교의 중심도시로 자리 잡았다.20세기의 주요한 신문명 가운데 하나인 영화가 유료관객을 상대
우식씨의 작은애가 대학교에 입학하던 해였다. 살고 있는 강남 아파트의 재건축이 시작된다는 거창한 계획이 단지 주민회의에서 발표되었다. 우식씨는 향후 10년 이상은 걸린다는 말에 학군 문제도 신경쓸 일이 없어진 터라 그 아파트를 전세 주고 외곽의 신축아파트로 전세를 얻어 나왔다. 그런데 벌써 어언 15년이란 시간, 아니 긴 세월이 흘러버렸다. 15년이 흘렀지만 ‘명품아파트’로 거듭난다던 그 아파트는 아직 재건축의 첫 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1980년대 초에 결혼해서 그 시절에는 요즘과 달리 강남에만 아파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겨울밤 찡하니 익은 동치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고춧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그리고 담배 내음새 식초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수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랫목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들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국수' 백석 시인슴슴하다는 무슨 맛인가?[이모작뉴스 고석배 기자] ‘슴슴하다’를 사
양성입니다. 진료실 밖에서 기다리던 내게 또렷하게 들려온 의사의 목소리는 의례적인 것이었지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감기 몸살이 아니에요?코로나 양성이니까 처방전 받아서 약국에 가시면 됩니다.코로나라구요?한 사흘 지독한 몸살을 앓았다. 집에 있던 종합감기약을 먹었지만 차도가 없어서 병원을 찾은 것이었는데 의사는 대뜸 진단키트를 들이밀었다. 면봉이 콧속을 쑤시자 눈물이 찔끔 나왔다. 말로만 듣던 코로나 검사였지만 양성이 나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는 나라에서 지정한 고령자 축에 속했기 때문에 3차까지 백신을 접종했고, 집밖을
스포츠관: 쿠베르탱과 올림픽정신2 1924년 vs 2024년 파리올림픽 스토리1924년 파리올림픽...쿠베르탱의 명예회복[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파리에서 죽을 쑤는 바람에 올림픽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잠시 시들해졌던 것 같다. 대회 이듬해인 1901년 쿠베르탱 위원장은 미국의 테오도르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몇 통의 편지를 보냈다. 아첨에 가까울 정도의 겸손을 담아 1904년으로 예정된 세 번째 올림픽 대회가 무산되지 않도록 협조해줄 것을 호소하는 내용이다.처음에는 뉴욕이나 시카고 같은 대도시를 염두에 두었지만, 여러 차례의 조정 끝
눈이 많이 와서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김치저장고)로 가고마을을 구소한 즐거움에 싸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이것은 오는 것이다.(중략)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국수'. 백석 시인 #1. 외롭고 그리우면 냉면을 찾는다육수를 들이켜며 그리움을 마신다. 시원한 육수에 막
스포츠관: 쿠베르탱과 근대올림픽1 씨알이 된 ‘웬록 올림픽’, ‘자파스 올림픽’쿠베르탱, 평화의 길을 모색하다[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프랑스의 시민혁명이 성공을 거두기까지 1백년의 시간이 걸렸다고들 한다. 1789년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이후 왕당파와 공화파, 그리고 시민들 편에 서서 영웅이 되었다가 스스로 황제가 된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이 복잡한 세력들이 뒤얽혀 1백년 가까운 세월을 혼란 속에서 지내야 했다. 주변국들과의 전쟁도 치러야 했다. 1백만 넘는 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