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철씨는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운동모자를 휙 벗고 마스크를 내린 뒤 거실 벽에 붙은 큰 거울에 얼굴과 전신을 이리저리 비춰 보았다. 그러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소파에 앉아 있는 부인 민자씨에게 진지하게 물었다.“당신 눈에도 내가 진짜로 할아버지로 보여?”소파에 앉아 텔레비전 드라마와 스마트폰을 동시에 보고 있던 아내 민자씨는 사뭇 진지한 남편의 질문에 깔린 진정한 의도를 간파하지 못하고 건성으로 대답을 하고 말았다.“왜 누가 당신 보고 할아버지라고 해요?”“아, 지금 막 공
저렇게, 궁극에 이뤄본 적이 있는가?번성하는 여름아침마다 마당에 나와 자연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 놀랍다.하루가 다르게 무섭게 커가는 모습은, 차라리 경이롭기까지 하다.마치 십 대 아이들이 변해가는 모습 같다.오늘 아침에는 하루하루 커가는오이의 번식력에 감탄하다가,다시 한 번 놀란다.줄기를 따라 왕성하게 뻗어 내려가던 오이 넌출에서 뿌리가 나와자기 잎을 뚫고 내려갔다.뿜어져 나오던 열망을 주체할 수 없었나 보다,살모사(殺母蛇)의 생태를 보는 듯도 하다.어쩌면 잎사귀 아래 다른 화분의 흙냄새를 맡고주체할 수 없는 열정에 뿌리를 내렸
[20세기 스토리박물관]'파리만국박람회' 1900년, 화려하게 문을 연 20세기 전야제1900년 4월14일 파리만국박람회 열려[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봄바람에 꽃잎들이 흩날리는 샹젤리제 거리는 유난히 많은 인파로 북적이고 있다. 앞으로 7개월 동안 이어질 만국박람회(Exposition universelle)가 개막하는 날이다. 시민들의 얼굴에는 자부심과 호기심의 표정이 역력하다. 프랑스의 전국 각지에서, 또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로부터 세기적 이벤트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여러 날에 걸쳐 기차나 마차를
[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2천 년대에 들어 겨우 20여년이 흘렀을 뿐이지만, 그 사이에도 우리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집집마다 개인 컴퓨터를 통해 인터넷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서기 2000년이다. 당장 IT시대가 찾아온 것이라고 했다.그리곤 격변이 일었다. 방금 생긴 IT관련 기업들이 몇 년 안에 매출 상위기업으로 올라섰는가 하면 유망직업·인기직업의 순서도 바뀌었다. 이제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기계들과 더 친숙해지지 않으면 일상을 영위하기 어려울 정도다. 버스나 전철을 이용하거나, 금융·행정 민
Z씨는 이제 70고개를 넘어가는 길목이니만큼 기억력도 옛날만 못한 것 같아 티비에서 알려주는 각종 뉴스와 정보를 잊어먹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는 중이었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티비 자막을 수놓는 영문으로 된 각종 용어들은 영문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짜증이 났다.며칠 전에도 대한노인회 G군 지회 노인놀이방에서 옆 마을 김영감에게 LTV를 '쌍방향 디지털 TV'라고 우기다가 그것이 정작 주택담보대출 약자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스타일을 팍 구긴 사건 이후로 한동안 티비시청을 기피하였고 TV라는 글자만 봐도 기함할
“여보, 오늘도 무사히 잘 보내요!”요즈음 중식씨와 경선씨는 아침 8시쯤 아파트의 현관문 앞에서 이런 인사를 나누었다. 염색을 싫어해서 머리칼이 온통 허연 중식씨와, 염색을 했으나 자라나는 흰머리칼이 숨길 수 없이 머리밑으로 드러나는 경선씨는 영락없는 60대 중반의 부부다. 그런데 ‘오늘도 무사히!’라니. 이 말은 보통 개인택시나 버스를 운전해서 늘 위험에 노출된 가장에게 해주는 아침인사말인데 이 부부는 무슨 일을 하는가.중식씨와 경선씨는 매일 아침 각자의 부모님 댁으로 출근을 하고 있다.
Y씨는 J고등학교 교문 경비실 근무 30년만에 퇴직을 하고 시골로 내려와 텃밭을 가꾸며 지내온 지 삼년째 되어간다.늘 꿈에도 그리던 고향집인지라 나날이 추억과 감동으로 점철되었으나 시도때도 없이 나타나서 자기를 괴롭히는 수풀모기는 짓이기고 싶도록 미웠다. 시커먼 몸뚱이에 흰 줄이 서네 개 처진 그놈은 Y씨와 눈을 마주쳤다 하면 이미 늙은이의 몸뚱아리에서 한 홉 가량 흡혈을 하고 난 뒤였다."내 피를 뽈아묵어봤자 넌 문족지혈(蚊足之血)이다 작껏! 내 평생 참을성 하나로 버텨왔는디 뭐."Y씨는 매번 이렇게 다짐을 하며 하루하루를 매진하
G군청 문화관광과에서 마련한 3개월짜리 어린이한자 공부방 훈장인 윤항구(75세)옹은 농협에서 운영하는 파머스마켓에 모처럼 들렀다. 윤 훈장은 마켓 문을 들어서며 그곳을 농부장터라고 부르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여그서 전지 살 수 있어요?""예 어르신. 저기 가정용 소모품 코너에 있어요."윤항구 노인은 왜 그걸 하필 소모품 진열장에 갖다 놓았을꼬, 투덜대면서 그곳에 다가갔다."여보씨요. 전지가 없는디?""바로 그 앞에 있잖아요.""워디?"마켓 직원은 살짝 짜증난 얼굴을 하고는 직접 배터리를 집어서 윤 노인에게 건넨다."아니! 나더러
자동차 있는 분들1대당 80만원 줍니다.빨리 확인하세요!!!Y씨(70세)는 정년퇴직 후 고향집 골방에 누워 알뜰한 알뜰폰에 구렁이알처럼 사랑스러운 모바일 데이터를 아끼고 아껴가면서 근근이 세상과 소통하고 있었다.그러던 어느 봄날 Y씨는 눈이 번쩍 뜨이는 너(you)튜브 제목을 하나 만났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세를 고쳐 앉은 Y씨는 제목 마지막 줄에 힘차게 찍힌 3개의 느낌표가 좌심방을 콕콕 찔러대는 느낌이었다.하지만 Y씨는 100만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브 '시니어전성시대'를 진행하는 아줌마의 설명을 서너 차례 연
K광역시 남구에 사는 Y씨(70세)는 모바일 문자를 받고 가슴이 덜컹거렸다."귀하께서는 우수고객으로이번 봄맞이랜덤 추첨행사에서당첨되셨습니다.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세상에 당첨이 웬 말이냐! 돌아보면 평생 거의 꽝 인생이 아니었던가. Y씨는 당첨이라는 글자에 자못 흥분이 되었다."그런디 랜덤이 뭐여?"Y씨는 문자를 보낸 P사의 전화번호를 찾아내 전화를 걸었다."거그 요구르트 맹그는 곳 맞는가요?""네. 고객님! 무슨 일이신가요?""지가요, 문자를 하나 받었는디, 뭔 랜덤을 추첨했다고요잉?""아. 그거요. 랜덤을 추첨한 게 아니구요.
인옥씨는 요즘들어 자꾸 한숨이 나고 절로 눈물이 흘렀다. 코로나 시절이 오래되자 누구나 겪는 코로나 블루인 것 같아서 처음 며칠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멍하게 소파에 앉아 있다가 가게 되는 곳이 작은 아들의 방이었다. 아들만 둘을 둔 인옥씨는 한 달 전에 작은 아들을 결혼시켰다. 요즘은 부모가 주체어인 ‘결혼을 시켰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자식이 주체인 ‘결혼을 했다’라고 말한다지만, 부모의 마지막 역할이 자식의 결혼이라고 생각해왔던 인옥씨 입장에선 마침내 두 아
심 권사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한다. 기도 제목이 많지만 무엇보다 우선하는 것은 일본에 사는 딸네 가족의 평안이다. 평생을 해 온 가족구원의 기도가 뒤로 밀린 것은 코로나 펜데믹이 발생하고, 일본의 코로나 확진 상황이 심상치 않게 된 다음부터다. 심 권사는 속이 타서 더욱 기도에 매달렸다. 여기저기서 살기가 어렵다고, 코로나 때문에 굶어죽을 판이라고 아우성이다. 하물며 타국 생활인들 오죽할까. 심 권사는 자신보다도 일본에 살고 있는 딸네가 더 걱정이다. 이러한 세상을 살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몇몇 출중한
눈이다. 눈발이 허공을 가르며 휘날린다.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점점 더 거세진다. 바람에 쫓기는, 더욱 굵어진 눈발이 허공에 가득하다. 며칠 동안 포근하더니 다시 한파가 몰려온다는 신호인 것 같다. 겨울은 역시 겨울이다. 눈과 바람을 쌍으로 초대한다.나는 점심 후, 커피 잔을 들고 베란다에 나왔다가 꼼짝없이 묶여버렸다. 쏟아지는 눈발에 사로잡혀 커피 잔을 들고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한다.어느새 함박눈이다. 거센 눈발은 사라지고 함박눈이 사뿐사뿐 내린다. 바람도 잔잔해졌다. 유리문 너머 나뭇가지에도 길에도 차곡차곡 함박눈이 쌓인다.
얼굴을 스치는 실바람이 보드랍다. 나는 강 따라 난 산책길을 걷다 말고 징검다리로 들어선다. 어제 이맘 때 어스름이 밀려올 무렵이었다. 부부로 보이는 중년의 남녀가 강바닥을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잡다가 여자가 미끄러져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여자는 강물에 몸을 담근 채 남자를 바라보며 일어날 생각도 않고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모르게 덩달아 웃음이 터졌다. 나는 얼른 벌어지는 입을 틀어막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얼마만의 웃음인가. TV의 개그 프로를 보면서도 도무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온통 젖은 몸을
금자씨는 수학능력시험이 끝나고 각 대학별 논술과 특수전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가 새삼스레 추억이랄까, 감회랄까 하는 감정에 빠졌다. 지금은 대학교 3학년과 대학원생이 된 아들과 딸이 치른 4년간의 입시전쟁이 다시금 떠오른 탓이다. 금자씨는 두 살 터울로 아들과 딸을 두었는데, 아들이 재수를 하고 대학입시가 끝나자 작은딸이 고3이 되었고, 그 딸이 또 재수를 하는 바람에 총 4년간 수험생엄마 시절을 보냈다.그 4년간의 전쟁과도 같은 입학전형을 치르며 직접 가본 대학이 10여 곳이 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모든 방송사는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되는 휴월(虧月) 윤해원(尹海遠 70) 선생이 현장에서 체포되는 장면을 뉴스속보로 전하고 있었다.그날도 휴월선생은 ‘눈물의 사회적 가치’라는 주제로 강연을 마치고 강연장을 막 나서는 중이었다."당신은 독안에 든 쥐다, 피도 눈물도 없는. 빨리 손들고 나오라!"경찰청 기동타격대 차량 위에 설치된 엠프에서는 계속 자수 권유 방송이 흘러나왔다. 휴월선생이 유유히 걸어 나오자 강연장 입구에서 바리케이드를 쳐놓
인수씨는 인터넷으로 예약한 강원도 바닷가의 한 펜션을 무사히 찾았다. 자가용을 가져오지 않고 가까운 강릉역에서 택시를 타고 들어왔다. 달랑 작은 짐가방 한 개뿐이라 몸도 마음도 가벼웠다. 코로나 백신접종을 완료한 아내가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정어머니와 언니를 보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1달 정도 머물다가 온다기에 이참에 인수씨는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강원도 한 달 살기에 도전하기로 했다. ‘남자 혼자’라는 사실과 ‘한 달 살기’라는 두 가지 명제가 그리 어려울 것 없어 보이는 조합이지만
황무진씨(69세)는 온갖 험한 일을 하면서 참 잘 버텨오다가 늘그막에 얻은 손자 돌잔치를 맞이하게 되어 감격에 겨웠다.아들내미도 비록 좋은 학교는 보내지 못했어도 지금은 어엿한 중소기업 사장님 소리를 듣고 있으니 딱히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돌잔치는 화려하다 못해 눈이 부셨다. 조명등은 방송국 드라마 세트장보다 으리번쩍했고 이벤트 사회자의 말솜씨는 좌중을 휘어잡는 것을 넘어 구사되는 미사여구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돌잔치의 주인공과 엄마, 아빠, 그리고 하객들 또한 선남선녀가 따로 없었다."자, 하객 여러분! 이제 가장 중요한
초코파이 ‘情’ 에피소드편[이모작뉴스 김남기 기자] 러브마크 브랜드 스토리는 역사가 깊고 소비자로부터 사랑받는 브랜드를 재밌는 에피소드와 함께 소개한다. 러브마크 브랜드 여섯 번째는 초코파이 ‘情’ 에피소드편다. ‘몰래 먹는 초코파이가 맛있다’ (ft. 박지성 축구선수)박지성이 영국 맨유팀에서 선수시절 주장 퍼디낸드의 트윗이 화재가 된 적이 있다. 박지성의 라커 앞에 팬들이 보낸 초코파이 사진을 찍어 올리고 “나와 동료들이 먹어치웠다”며, 트윗을 올렸던 것이다. 초코파이의 CF모델이었던 배우 김갑수가 맨유선수들에게 초코파이를 보내
초코파이 ‘情’ 브랜드 스토리[이모작뉴스 김남기 기자] 러브마크 브랜드 스토리는 역사가 깊고 소비자로부터 사랑받는 브랜드를 재밌는 에피소드와 함께 소개한다. 러브마크 브랜드 다섯 번째는 초코파이 ‘情’ 브랜드 스토리편이다.‘초코파이’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情’이다.“엄마 초코파이 글자 옆에 ‘아홉’이 써 있지?아홉? 무슨 말일까?초코파이패키지를 자세히 들여 다 보면 알 수 있다.[이모작뉴스 김남기 기자] 한 때, 훈련소입소해서 신병들이 가장 먹고 싶은 것으로 콜라와 초코파이를 꼽았었다.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DP'에서 선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