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기의 밑줄긋기 3] 모든 인간은 목에 밧줄을 두른 채 태어났다

박명기 기자
  • 입력 2018.10.11 15:38
  • 수정 2019.03.26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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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목에 밧줄을 두른 채 태어났다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소설 ‘모비딕(Moby Dick)’의 첫 문장은 “내 이름은 이스마엘이라고 부른다(Call Me Ishmael)”다. 이스마엘은 소설을 전달하는 화자의 이름이다. 거대한 향유고래 모비딕과의 싸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이자 구약성서 속 추방된 인물의 이름이기도 하다.

1851년에 발표된 허먼 멜빌의 이 소설은 미국 문학사상 불멸의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한국에서 소설 ‘백경(白鯨)’으로 소개되었고, 그레고리 펙이 주연을 맡은 영화로도 유명하다.

소설은 이스마엘의 회상으로 이뤄졌지만, 중심은 고래잡이배 피쿼드호 선장의 추적과 복수 이야기다. ‘모비딕’이라는 머리가 흰 거대한 향유고래로부터 다리 한쪽을 잃은 에이햅(Ahab) 선장, 그는 맹목적인 복수심에 불타 “모비딕을 반드시 잡고야 말겠다”며 40년을 쫓아다녔다.

모비딕을 찾아 대서양에서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으로, 태평양으로 항해를 계속한다. 어느 날 돌연 모비딕이 나타났다. 그리고 공격해왔다. 3일 밤낮 사투가 이어지고 에이햅 선장은 모비딕의 눈에 작살을 명중시켰다. 하지만 그는 작살에 메인 밧줄에 감겨 바다 속으로 영원히 사라졌다. 피쿼드호도 침몰했다.

인간의 무모한 도전에 대한 모비딕의 응징은 죽음이었다. 무모하리만치 어리석은 선장의 편집증적인 집착도 소용돌이 거품이 되어버렸다. 소설은 망망대해서 홀로 살아남은 이스마엘이 회고하는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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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은 미국 서부의 아름다운 도시다. 이 도시는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매번 ‘가장 살고 싶은 곳’으로 꼽히는 곳이다. 나는 운 좋게도 시애틀 출장을 두 번이나 다녀왔다.

스페이스 니들은 ‘UFO와 닮았다’는 말을 듣는 시애틀의 랜드마크다. 180m 높이로 우뚝 솟은 이 탑은 영화 '시애틀의 잠 못 드는 밤' 포스터에 등장해 유명세를 탔다. 스페이스 니들에서 내려다보는 시애틀 시가지는 아름다웠다.

인디언 추장의 이름을 딴 ‘시애틀’은 항구와 호수, 산맥을 끼고 있어, 먹거리와 볼거리가 많고 살기 좋은 도시다. 특히 시애틀은 글로벌 기업들의 본사가 많다.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 세계 최대 항공사 보잉, 글로벌 넘버원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 게임 팬들이라면 다 알고 있는 플랫폼 ‘스팀’의 밸브 등이 있다.

그리고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곳, 소설 ‘모비딕’하고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스타벅스 1호점이 시애틀에 있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위치한 시애틀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의 작은 가게가 그곳이다.

나는 시애틀로 출장을 갈 때마다 관광객으로 북새통인 스타벅스 1호점을 찾았다. 달콤한 노래로 뱃사람들을 유혹하는 그리스 신화 속 사이렌(Siren)이 새겨진 로고는 내가 두 차례 방문하는 동안 조금 바뀌었다. 젖꼭지가 사라졌고, 초기의 커피색도 현재의 초록색으로 변하였다.

출장은 게임쇼에 참여한 한국 게임사 엔씨소프트와 넥슨을 취재하기 위한 것이었다. 시애틀에 있는 밸브 본사도 방문했다. 밸브사 엘리베이터 출입구 앞에는 실제 밸브가 설치가 되어 있었다. 또한 밸브를 탄생하게 한 유명한 게임 ‘하프라이프’의 아이콘이자 밸브의 상징 ‘빠루’(표준말 노루발못뽑이)도 전시되어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캠퍼스라고 불리는 본사로 나홀로 찾기도 했다. 거기서 빌 게이츠와 함께 창업한 동지들과 함께 있는, 구멍 하나가 뻥 뚫린 대형 브로마이드에서 내 얼굴을 대고 사진을 찍은 기억도 새록새록하다.

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 콘솔기인 엑스박스(Xbox) 담당 한국계 부사장을 인터뷰했다. 그것은 내 기자 생활을 통틀어 최고 순간의 하나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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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등장하는 스타벅(Starbuk)은 광기에 빠진 선장에게 쓴소리를 하는 1등 항해사다.

제브 시겔, 제리 볼드윈, 고든 보우커 등 샌프란시스코 대학 동창인 세 명의 친구가 커피 전문점을 열기로 의기투합한 것은 1971년의 일이었다. 그리고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에 등장하는 일등 항해사 ‘스타벅’에서 커피점 이름을 따왔다. 거기에 3명의 창업자의 의리를 담아 복수형 ‘-s’을 붙인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스타벅스’ 브랜드의 기원이다. 이렇게 스타벅은 소설 출간 130년 이후 ‘바다의 신’ 사이렌의 형상으로 재탄생했다. 이제 전 세계 77개국 2만 5000여 매장에서 달콤한 노래가 아닌 커피향으로 지구촌 커피마니아를 유혹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선장 에이햅과 향유고래 모비딕이 조우하는 장소이다. 남태평양의 비키니 섬(정확히 표현하면 비키니 환초). 이곳은 1946년 세계 최초의 공개 핵실험이 벌어진 장소다. 또한 ‘비키니 수영복’ 이름의 유래가 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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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무엇보다 나를 전율케 하는 것은 고래의 그 흰색이다. 그러나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애매하고 난삽하더라도 그러나 어쨌든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모든 이야기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허빌 멜빌은 “인간은 누구나 포경 밧줄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고 소설에 썼다. 또한 “비극적으로 위대한 인물은 병적인 우울함을 통해 그렇게 된다...인간의 위대함이란 질병에 지나지 않다”는 문장을 남겼다.

실제 소설 ‘모비딕’은 출간 이후 사후 30년까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지금은 미국이 낳은 최고 걸작으로 ‘재발견’되고, 작가는 미국이 낳은 19세기 최고의 작가로 칭송받고 있다.

재발견한 것이 또 있다. 침몰한 포경선에서 선장과 함께 사라진 스타벅, 아니 스타벅스는 이제 한국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커피 브랜드가 되었다. 20~30대 지지로 시장에서 유일하게 1조대 매출을 기록하면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스타벅스는 1999년 이화여대 앞에 1호점을 오픈한 이후 현재 1180매장(2018년 6월 말 기준)을 갖고 있다. 인구 900여만 명인 서울의 스타벅스 매장수는 460여 개로 미국 맨해튼을 포함한 인구 800만 명의 뉴욕시 5개구 전체 매장수(361개)보다 100개 가량 더 많다.

아, 그렇다. 서울에 살고 있는 인간은 누구나 스타벅 항해사의 커피라는 포경밧줄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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