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기의 밑줄긋기 18] “나는 걸을 때만 명상할 수 있다”

박명기 기자
  • 입력 2019.01.21 08:00
  • 수정 2019.03.26 15:5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는 걸을 때만 명상할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나의 정신은 오직 나의 다리와 함께 움직인다.

-장 자크 루소

산티아고의 길에서 만난 노부부. 사진=박명기

사람들은 무엇으로 행복해지는가? 누구와 함께 있는 것이 행복할까? 제대로 쉴 만한 장소에서는 얼마나 행복해지나? 대답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도 묻는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생각을 빌려 나만의 답을 하고 싶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프랑스 사회학자 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예찬>에서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 사진=박명기

<나는 걷는다>, 62세 베르나르 올리비에 1만2000km 대장정

베르나르 올리비에(Bernard Olivier)라는 ‘걷기의 달인’이 있다.

그는 30년간 기자생활을 한 이후 나이 62세에 실크로드 걷기에 도전했다. 그것도 이스탄불을 기점으로 중국 서안까지 장장 1만2000km의 대장정을 말이다. 더군다나 세계 최초로 전부를 걸어서 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이 경험을 <나는 걷는다>라는 책으로 써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은 ‘걷는 이들의 바이블’로 등극했다. 또한 그는 프랑스에서 산티아고까지 800km 순례길 ‘산티아고의 길’을 대중화시킨 인물 중의 한 명이기도 하다.

제주올레를 개척한 서명숙 이사장도 ‘산티아고 가는 길’을 다녀와 제주올레를 구상했다. 나도 이들의 ‘초짜 신도’로 걷기에 입문해 제주올레 4일, ‘산티아고의 길’ 140km를 걸었다.

“만권의 독서를 하고 만 리를 여행해봐야 가슴에 쌓여 있는 탁기와 먼지를 털어버릴 수 있다.”

-중국 서예가 동기창의 책 <화안>

나는 제주올레와 ‘산티아고의 길’에서 중국 서예가 동기창이 <화안(畵眼)>에서 설파한 위의 ‘독서만권 행만리로(讀書萬卷 行萬里路)’ 뜻을 다소나마 따라가 보았다. 그리고 행복했다.

영화배우 하정우의 베스트셀러 <걷는 사람, 하정우>. 사진=박명기

 배우 하정우 하루 3만 보…<장미의 이름> 저자 움베르토 에코 ‘걷기예찬’

배우 하정우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지난해 출간한 <걷는 사람, 하정우>는 하루 3만 보 걷기를 실천하고 있는 그를 소개해 화제가 되었다.

그는 서울에서 해남까지 동료들과 함께 577㎞를 걷는 ‘국토대장정’을 했다. 하와이에선 하루 10만 보 걷기에 도전했다. 심지어 비행기를 타러 강남에서 김포공항까지 8시간을 걸어간 적도 있다.

소설 <장미의 이름>으로 유명한, 2016년 타계한 소설가이자 중세학자인 움베르토 에코도 여행과 걷기를 예찬했다.

그는 유럽을 여행하는 중에 어느 도시나 마을에 머물 때면 가급적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았다고 한다고 잘 알려져 있다. 오로지 두 발과 두 다리로만 이동하며 생활할 때 비로소 중세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그들이 느꼈던 당시의 감정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중세학자라는 전공을 살리면서 휴식도 즐기는 ‘프로 휴식가’인 셈이다.

플로렌스 윌리엄스가 쓴 <자연이 마음을 살린다>. 사진=박명기

 마을 오솔길에서 탄생한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잡지 <아웃사이드>의 편집자 플로렌스 윌리엄스가 쓴 <자연이 마음을 살린다>에는 ‘도시생활자가 일상에 자연을 담아야 하는 과학자 이유’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이 책에서 스마트앱 매피니스의 데이터를 소개한다. 사람들은 일하거나 아파서 병상에 누워 있을 때 가장 행복하지 않다. 그러나 친구와 연인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변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놀라운 변수는 누구와 함께 있고 무슨 일을 하는지가 아니었다. 정작 중요한 요인은 ‘어디에 있느냐’다.”

그렇다. 친구와 연인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그리고 “도시환경보다 사방이 푸른 곳이나 자연 속 주거형태에서 유의미하게 더 행복했다.”

루소처럼 ‘걸을 때만 명상할 수 있다’는 정도는 아니지만 ‘머무는 장소’는 행복을 불러일으키는 최고의 요건의 하나다. 실제 아리스토텔레스는 밖으로 나가 산책하면 머리가 맑아진다고 믿었다. 다윈, 테슬라, 아인슈타인도 정원과 숲을 걸으며 산책했다.

프랑스 작은 에즈 마을에는 ‘니체의 길’이 있다. 이 마을 오솔길을 걸으며 그는 불후의 명작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썼다.

“심오한 영감의 상태, 모든 것이 오랫동안 걷는 길 위에서 떠올랐다.”

서울 독립문 서대문형무소 옆길에서 시작하는 안산자락길. 사진=박명기

도심 공원을 산책하는 노부부의 뒷모습은 한 폭의 인생 풍경화

세계 최대 부자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는 1년에 두 번 ‘생각주간’을 갖는다. 그는 홀로 호숫가 통나무집으로 간다. 거기서 누구에게도 방해를 받지 않은 채 자신만의 생각에 몰입한다. 그는 말한다.

“나는 경쟁자들이 두렵지 않다. 그들의 생각이 두려울 뿐이다.”

-<빌 게이츠는 왜 생각주간을 만들었을까> 중

<빌 게이츠는 왜 생각주간을 만들었을까> 사진=박명기

신원섭 충북대 산림학과 교수는 “숲과 자연이 우리의 면역을 높여주고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도심 속 공원에서 15분에서 45분만 머물러도 기분이 좋아지고 활력이 생기고 몸이 회복된다.

서울 도심 안에는 걷거나 산책할 공간이 태부족이다. 하지만 둘러보면 서울둘레길, 북촌길, 덕수궁돌담길, 몽촌토성길, 문학숲길, 자드락길 등 도심의 허파와 핏줄처럼 연결되는 길들이 많다.

영국 테크마크가 실시한 설문에서는 현대인은 일주일에 1500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다른 즐거움을 놓치고 있다고 한다. 이제 스마트폰 대신 자연을 보는 즐거움, 걷기의 즐거움을 발견해야 한다.

걷기는 생각을 늘리고 대신 뱃살을 줄여준다. 걷는 것을 즐기면 인생도 즐거워진다. 골몰하고 염려하는 시간은 떼어버리고 걸을 때 감각을 느끼며 걸어보라! 걷기에서도 시속 3마일, 즉 5km의 속도로 움직이면서 주변을 바라볼 때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고 한다. 그것이 걸으면서 바라보는 속도다.

고독을 즐기는 ‘혼행족’(혼자 여행하는 사람)도 좋지만 ‘같이 걷는’ 뒷모습도 아름답다. 도심 공원을 산책하는 노부부의 뒷모습은 한 폭의 인생 풍경화다. 도심의 오솔길에서 피어난 스토리텔링이자 걷기의 예술이다.

건축가 승효상은 말했다. “도시는 공간만이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다. 기억의 총합이다.” 여기에다 도시를 사랑하려면, 숲을 사랑하려면 ‘걸으면서 명상하는’ 추억과 시간을 추가하고 싶다.

 

 

 

 

 

저작권자 © 이모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