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기의 밑줄긋기 9]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박명기 기자
  • 입력 2018.11.19 16:20
  • 수정 2019.03.26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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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시인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마지막 연

 “사랑이란 무엇인가? 남에게 자기 자신을 완전히 여는 것이다. 외적 인물이 잘나서 또는 장점이나 돈, 지위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사랑론이다. 그는 한국 가톨릭 200년 역사상 처음으로 추기경으로 임명되었다.

“봄이 오면 꽃이 피지요. 그런데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게 아니라, 꽃이 피면 다 봄이요. 즉 화목하면 어디나 다 봄이란 말이요.”

이 말은 ‘무소유’로 유명한 고 법정 스님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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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종교적인 지도자로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이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法頂) 스님이다. 두 사람은 종교 차이를 넘어 남다른 정신적인 교류를 가졌다.

스스로 ‘바보’라고 불렀던 김수환 추기경은 “교회는 가난한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는 믿음을 실천했다. 내가 대학 시절 그는 한국의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받았다. 그의 말 한마디는 군부독재 밑에서 시름하는 상황에서 큰 영향을 미쳤고, 교회 안팎에서 노동자들과 지식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1999년 그가 하늘로 떠나는 날 명동성당을 찾은 조문객은 40만 명에 육박했다.

법정 스님은 자신의 책 ‘무소유’와 ‘버리고 떠나기’를 평생토록 실천했다. 그는 ‘중 벼슬은 닭 벼슬보다 못하다’며 그 흔한 사찰 주지 한 번 지내지 않았다. 다만 1996년 서울 도심의 요정 대원각을 시주받아 이듬해 길상사로 고쳤다. 회주로 있다가 2003년 회주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직접 땔감을 구하고 밭을 일구며 무소유의 삶을 살았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사리도 수습하지 말고, 탑도 세우지 말며, 평소 입은 승복 그대로 다비해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심지어 자신의 책들도 더 출판하지 말라고 유언했다.

내 손에서 닳고 닳은 ‘무소유’는 1976년 4월 첫 범우사 문고판으로 출간된 이후 법정 스님이 입적한 2010년까지 34년간 약 180쇄를 찍은 한국 대표적인 베스트셀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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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우정을 나눈 두 사람은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이듬해 법정 스님까지 입적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시대의 큰 스승들을 잃었다”고 슬퍼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두 사람은 종교 화합에 앞장섰다. 1997년 서울 성북동 길상사 개원 법회에 김 추기경이 참석해 축사했다. 보답으로 법정 스님은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발행하는 평화신문에 성탄메시지를 기고했다.

법정 스님은 길상사 관음보살상의 제작을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조각가 최종태 전 서울대 교수에게 맡겼다.

법정 스님은 ‘민들레의 영토’라는 시집으로 유명한 이해인 수녀와도 “다정한 삼촌처럼, 때로는 엄격한 오라버님처럼” 교류했다. 두 사람은 종교를 뛰어넘어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이해인 수녀는 스님의 추도사를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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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동 길상사 입구 / 사진=박명기

길상사는 원래 고급 요정 대원각이었다. 대원각은 오진암, 삼청각과 더불어 한국 3대 요정이었다. 대원각을 법정 스님에 시주한 이가 자야(김영한, 1916~1999)다. 그녀의 백석(본명 백기행) 시인과의 러브스토리는 어떤 소설보다 더 가슴을 울린다.

백석의 대표작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을 때마다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영화 필름처럼 스스로 펼쳐지곤 한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백석 (‘여성’, 19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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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 김영한 사당 앞에 있는 '시주 길상화 공덕비' / 사진=박명기

백석은 일제 강점기 ‘모던보이’이자 훤칠한 미남자로도 유명했다. 곱슬머리에다 짙은 눈썹에다 깎아놓은 콧날, 목이 길고 키가 껑충했다. 100부 한정판으로 나온 그의 첫 시집 ‘사슴’은 시인 윤동주도 못 구해 필사본으로 일일이 베꼈다는 일화도 전해온다.

그는 유학파에다 탁월한 시적인 재능을 갖춰 많은 여성들로부터 인기가 높았다. 백석과 자야가 둘이 만난 것은 1936년 회식 자리였다. 한 명은 함흥 영생여고보 영어교사였고, 한 명은 글을 잘 쓰는 기생 ‘진향’이었다. 두 사람은 보자마자 첫눈에 눈에 콩깍지가 쓰였다.

그 자리에서 백석은 “오늘부터 당신은 영원한 내 여자야.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기 전까지 우리에게 이별은 없어”라고 선언했다. 백석은 김영한에게 ‘자야(子夜)’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다름 아닌 이백의 시에 나온 시구였다.

두 사람의 사랑이 불타오르고 동거에 돌입하자 부모들은 탐탁지 않게 여겼다. 아들을 강제로 결혼을 시켰다. 드라마틱한 반전은 백석이 결혼 첫날밤에 연인 자야를 찾아간 것이다. 그리고 자야에게 만주로 도망을 가자고 제안했다.

자야는 자신이 백석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해 거절했다. 백석은 먼저 만주로 떠났다. 백석은 자야가 자신을 찾아 바로 만주로 올 것을 확신했다. 1937년 만주에서 홀로된 백석은 자야를 그리워하며 시를 썼다. 바로 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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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 김영한 사당 안에 있는 자야 김영한 영정 / 사진=박명기

그렇게 잠시 이별이라고 생각했지만 영영 이별이 되었다. 해방이 되고 백석은 자야를 찾아 만주에서 함흥으로 갔다. 자야가 서울로 떠나버린 이후였다. 전쟁이 터져 남북이 막혀버렸다. 둘은 다시는 보지 못했다.

백석은 1950년대 중반 북한 최북단 양강도 삼수군 협동농장으로 추방되어 양치기 생활을 했다. 한국 시인들이 가장 사랑했던 시인으로 뽑힌 그는 1996년에 생을 마감했다.

자야는 대원각을 세워 엄청난 재력가가 되었다. 자야는 1987년 법정 스님 ‘무소유’를 읽고 감명했다. 그리고 당시 시가 1000억 원 상당의 7000평 넓이와 40여 채가 있는 대원각을 조건 없이 법정 스님에게 시주한다.

법정 스님은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10년 만에 시주 간청을 받아들였다. 대원각은 ‘길상사(吉祥寺)’로 다시 탄생했다. 평생 백석을 그리워했던 자야는 1999년 83세에 세상을 떠난다.

“평생 모은 전 재산이 그 사람 시 한 줄만도 못해”라고 말한 자야. 자야는 백석의 생일인 7월 1일에는 늘 한 끼의 밥도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내 사랑 백석>이라는 책도 썼다.

자야는 평소 “내가 죽으면 화장해 길상사에 눈 많이 내리는 날 뿌려달라”고 말했다. 이제 자야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처럼 눈이 푹푹 내리는 날 백석을 다시 만날 것 같다. 그리고 너무 좋아서 응앙응앙 울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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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 김영한 사당앞에 있는 자야와 백석 안내판 / 사진=박명기

진영각은 길상사 법정 스님의 거처였던 건물이다. 사찰의 맨 위에 위치한 건물 안에는 영정 사진과 만년필, 평소 쓰던 라디오, 유언증, 승려증, 원고지와 출간한 책들이 있다. 담장 밑에는 유골 모신 곳이 있다.

길상사에 가면 꼭 찾아가는 진영각과 함께 영락없이 성모마리아 느낌이 물씬 풍기는 최종태 조각가의 관음보살상 앞에 서서 합장한다.

이 절집에서 특별히 발길이 멈추는 곳은 김영한 사당이다. 법정 스님에게 전 재산을 시주하고, 대신 염주 한 벌과 법명 길상화(吉祥華)을 받을 뿐이었다. 건물 앞에는 ‘시주 길상화 공덕비’와 자야의 일생과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 전문이 실린 안내판이 있다.

아 숭고한 사랑이여. 이 절집에서는 ‘눈이 푹푹 나리는 날이면’ 김수환 추기경-법정 스님의 우정과 함께 시인 백석과 자야의 절절한 사랑이 전설처럼 떠도는 누나.

일본의 국민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와 한국의 대표시인 신경림의 대담 마지막 질문과 답은 이렇다.

“세상의 모든 단어를 다 지우고 하나만 남길 수 있다면 무엇을 선택하시겠어요?”

“사랑(あい,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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