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기의 밑줄긋기29]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박명기 기자
  • 입력 2019.04.08 10:42
  • 수정 2019.04.15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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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 시 <저녁에>

한국가구박물관.    사진=박명기

만남은 설렌다. 특히 여행길에서 우연하게 만나 펼쳐지는 인연은 더욱 각별하다. 여행도 인생도 실로 길에서 만난 인연으로 이어진 선들일지도 모른다.

성북동에 가면 절로 떠오르는 사람, 시와 그림이 있다. 우선 한국 최초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이 있다. 국보를 다수 소장한 이곳은 1년에 1~2회만 개방한다.

또한 만해 한용운이 머문 '심우장(尋牛莊)'이나 시인 백석의 연인 김영한이 소유했던 유명 요정 ‘대원각’을 법정 스님에게 10년간 시주를 요청하여 탄생한 '길상사'가 그렇다.

하지만 시 <성북동 비둘기>를 쓴 이산(怡山) 김광섭(1905~1977) 시인의 시 <저녁에>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시는 한국 미술계의 대표 명작인 수화(樹話) 김환기(1913~1974) 화백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낳았다.

성북동 빵공장.    사진=박명기

최근 성북동 핫플레이스는 미식가를 부르는 성북동 빵공장과 성북동면옥집이다. 그리고 하나 더, 아주 특별한 명소를 발견했다. 바로 ‘한국가구박물관’이다.

■ 세월을 거슬러 시간여행, 2500점의 한국가구의 멋

한국가구박물관은 개인이 운영하는 사설박물관이다. 사전 예약에다 최소한 14명 이상이 되어야 입장이 가능할 정도로 ‘문턱’이 높다. 일반인에게 비교적으로 덜 알려지지 않았지만 문화가나 외교가에서는 유명한 장소다.

최근 27년 만에 한국을 국빈 방문한 벨기에 국왕이 찾았고, 몇 년 전 시진핑 중국 주석도 방문한 명소였다. 2010년 G20 정상회담 만찬이 열렸고, 살림의 여왕 마사 스튜어트가 찾았고,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도 머물다가 가기도 했다.

박물관은 손님을 맞을 때마다 직접 마당을 쓸어놓는 정미숙 관장의 열정과 노력이 일군 결정체다. 방문한 그날도 가지런하게 마당이 쓸려져 있었다.

그는 미국 유학 중 한국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질문에 바로 대답을 못한 것이 걸려 귀국 후 조선시대 목가구를 본격으로 연구했다. 정 관장은 1960년대부터 근대화와 도시화로 한옥이 헐리고 목가구가 버려지는 시절, 오히려 여기저기 버려진 가구를 모았다.

CNN 홈페이지 서울여행 섹션 한국가구박물관 소개.    사진=CNN홈페이지

가구박물관은 1993년 사설박물관 등록한 이후 1995년 한옥 10채를 옮겨와 이곳에 박물관을 조성했다. 2011년부터 대중에 공개된 현재 가구박물관에 소장된 가구는 2500점이다. 박물관 이름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지어주었다.

■ 서울에서 가장 중요하고 아름다운 건축물

CNN은 홈페이지에 서울에서 꼭 가보거나 해야 할 열 가지 중 첫 번째로 한국가구박물관을 올려놓았다. 열 가지에는 북촌한옥마을, 광화문, 인사동, 봉은사에 한국갈비 등도 들어있다.

“한국가구박물관 자체는 서울에서 가장 중요하고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다. 큐레이터 및 디자이너가 도시를 찾을 때 처음으로 방문하는 곳 중 하나다.”

-CNN 홈페이지 ‘서울에서 해야 할 10가지’, 2017

박물관 탐방은 가이드 인솔로 팀이 이뤄졌다. 실내 사진은 금지, 가구를 마음에 담아가라는 뜻으로 도록도 없다. 하지만 가이드 설명은 휘모리장단으로 몰아친다. 귀에 쏙쏙 들어온다. 먹감나무 가구와 단풍나무 가구, 제주에서 온 180년 된 휘가시나무 가구 등 자료별, 종류별, 지역특성별 가구 설명에 대해 절로 탄성이 터진다.

한국가구박물관 방문객들.    사진=박명기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는 내력도 재밌다. 오동나무는 15년이 되면 가구로 짤 만큼 성장한다. 이 때문에 오동나무 별명은 ‘혼수목’이다. 시간여행이었다. 브래드 피트가 놀라워한 가구와 전국 8도마다 독특한 양식과 장인들의 미적 감각을 확인하는 ‘백투더퓨처’였다.

왕비가 살던 한옥을 옮겨온 집 안방에 앉아 내려다보는 창 너머 눈높이 봄 풍경들은 아름답다. 늙지 않는다는 ‘불로문’이나 장독대와 십장생도가 그려진 굴뚝 등을 둘러보고 툇마루에서 봄 햇살을 쬐니 딴 세상에 온 듯하다. 미세먼지가 사라진 하늘 아래 담 밑으로 펼쳐지는 봄 풍경, 저 멀리 남산타워가 선명하게 들어왔다.

■ 성북동에서 만난 김광섭 시인과 김환기 화백과 유심초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김광섭 시 <저녁에> 첫 연

김광섭 시집 <성북동 비둘기>

지난해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10주년을 맞아 한국 평론가 37인에게 한국 근현대 대표작가를 물은 적이 있다. 그 결과,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김환기가 1위를 차지했다. 백남준이 2위, 박수근이 3위에 올랐다.

김환기 화백은 한국적 달항아리와 학, 달, 여인, 매화, 사슴 등 독자 추상으로 유명하다. 한국 화가 중 매번 옥션 경매가 최고기록을 경신하는 화가이기도 하다.

남편 사별 후 부인 김향안(본명이 변동림)이 설립한 환기미술관은 서울 부암동에 있지만 김환기는 성북동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김환기의 대작이자 한국 추상화가의 대표작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의 탄생 비화도 감동적이다. 그는 50세에 홍익대 미술대 교수를 때려치우고 뉴욕으로 건너갔다.

뉴욕 생활의 외로움 속에 화가가 발견한 것은 성북동서 가까이 살며 교분을 나눴던 김광섭 시인으로부터 받는 소식, 시였다. 시 <저녁에>를 통해 위로를 받았고 한 구절을 따와 이를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벽시 <성북동 비둘기> 사진=유튜브 EBS

이 그림은 단색의 점과 선이 무수히 반복되어 찍혀진 점묘로 가득 찬 전면 점화다. 한국미술대상전에 대상을 받았다. 그가 "서울을 생각하며, 오만가지 생각하며 찍어가는 점"이었다. 한국적 소재를 화면에 단순화했던 김환기의 반추상화는 이 그림 이후 본격적인 추상화로 변신했다.

흥미로운 건 시 <저녁에>는 1980년대 초 유심초라는 쌍둥이 형제 가수에 의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제목의 대중가요로 불려졌다.

■ 성북동, 지금은 부촌이지만 1960년대엔 ‘거친 동네’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 중에서

성북동은 지금은 부촌이지만 1960년대엔 ‘거친 동네’였다. 김광섭 시인은 시 <성북동 비둘기>를 1968년에 발표했다. 시인은 성북동 산과 산동네가 개발되면서 둥지를 빼앗기고 생활의 터전을 잃게 된 산비둘기의 모습을 보고 시를 지었다.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위쪽의 성북동 북정마을. 사진=유튜브 EBS

세월이 흘러 성북동은 대기업 그룹 회장, 학계 등 저명한 인사가 사는 한국 부촌의 상징 중 하나가 되었다. 여전히 부촌과 달동네가 공존하는 성북동, 서울시는 '박물관마을'로 구상 중이란다.

들여다볼수록 조상들의 우아하고 단아한 맛과 멋이 손금처럼 숨어있는 성북동, 참 번지가 없어진 비둘기들과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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