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씨는 이른 아침에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신문을 가져와 식탁 위에 놓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퇴직 전에는 대충 신문의 큰글씨만 훑어보고 출근하기 바빴지만 지금은 오전에 시간이 많아서 신문을 마음껏 다 읽을 수 있었다. 아주 할 일이 없는 처지는 아니고, 오전 11시쯤에는 집을 나간다. 친한 친구가 운영하는 국밥집에서 가장 손님이 많이 몰리는 점심시간에 카운터를 봐주고 있어 하루 일과가 나름 정해져 있는 편이다.윤호씨에겐 부인이 아침밥을 차리는 동안 신문을 펼쳐 들고 읽는 그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아침의 이 평온이 언제까지나 계
인간은 직립보행으로 두 손이 자유로워지고 두뇌도 훨씬 더 커졌다. 직립보행은 인간에게 2가지 획기적인 변화를 준다. 무언가를 잡고 휘두르게 된 손은 맹수의 공격을 막으며, 성장한 두뇌로 생각을 키운 것이다. 그래서 직립보행은 인간 문명의 시작을 예고한 사건이라 해도 좋으리라 본다.이후 인간을 지칭하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는 이름처럼 생각하는 인간은 여타 동물과 다른 생명의 길을 가게 된다. 생각하는 사람은 드디어 생존본능만 가진 야생동물과 차별화된 것이다.생각하는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 메슬로우(Mes
“눈 부셔요? 그만 들어갈래요?”“아녀, 기냥 조금 더 있자.”꽃샘바람이 사나웠지만 햇살은 화사 했다.“좀 앉을래요?”“아녀, 서 있을 만혀.”삼촌은 중심을 잡지 못해서 거반 내게 기대어 서있으면서도 앉으려 들지를 않았다.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삼촌을 부축했다. 예전 같으면 삼촌의 등 뒤에서 와락 껴안고도 부족해서 삼촌의 등에 얼굴을 부비며 어리광을 부렸을 터였다. 어쩌다가 삼촌과 이리도 서먹해졌는지 모르겠다.“그만 들어가요. 나는 추
언젠가부터 우리 주변의 노인단체들 명칭이 ‘○○노인협회’에서 ‘○○시니어협회’로 바뀌고 있다. 노인이라는 단어 대신에 시니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노인복지를 전공한 필자도 이미 10여 년 전부터 노인이 아닌 시니어로 명명된 연구소에서 활동하다 보니, 사뭇 반가운 마음이다. 당시 필자가 노인이 아닌 시니어로 명명한 것은 나름의 고민에서 나온 선택이었다. 노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이미지와 편견들, 그 스티그마에서 벗어나려는 뜻이었다.사실 십 수 년 전만 해도 노인복지영역에서 인식하는
퇴근 시간, 서울특별시 어느 시내버스 안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 예의 퇴근길 시내버스 안은 매우 붐볐다. 그때 머리가 반쯤 벗겨지고 귀밑머리가 희끗한 중년 남자(A씨, 당 53세)가 미아리고개에서 꾸부정한 자세로 허겁지겁 승차한다.승객 A : (시내버스 안을 두리번거리며, 혼잣말로) 아~따, 징허게 춥네잉.A씨는 시내버스 안을 살피다가 버스 뒤쪽으로 삐직삐직 파고들기 시작했다. A씨는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볼멘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드디어 맨 뒷좌석까지 당도하게 되었다. 맨 뒷좌석에는 모두 다섯 명이 착석하고
그동안 여러 차례 화, 폭언, 악플에 대한 폐해에 대해 언급해 왔다. 오늘은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이 표출하는 과정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폭언이나 악플로 자신의 화를 드러내는 순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양한 감정들이 응축되어 있다. 평소 지나친 감정 절제로 인해 잠재된 분노가 순간적으로 터져 나오는 현상이 그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우리는 어린 시절 부터 참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떼를 쓰거나 울 때 보통 어른들로부터 "뚝 그쳐!", 또는 "착하지..울지 않아야 예쁜 아이야~" 라며 감정 표출을 저지당하며 자라곤 했다
엄마! 내 가슴까지 찢을 듯이 애절한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나는 찬송가를 부르다가 멈칫했다. 우리 일행은 좁다란 복도에 옹색하게 서서 영결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80세를 넘긴 고인에 대한 애도는 형식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고인과는 영정사진이 첫 대면이었다.단출한 유가족의 뒤를 따라서 장의차에 오를 때만 해도 그리 울적한 마음이 아니었다. 내 장례식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찬송가의 몇 장을 꼭 불러달라는 둥 해가면서 여유까지 부렸던 것이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니 하루 온종일, 엄마를 부르던 애끓는 목소리가 내
【이모작뉴스 천건희 기자】 갑자기 추워진 지난 5일, 젊은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덕수궁 돌담길에 위치한 ‘세실극장’에서 인생을 반추하게 하는 연극 을 관람했다. 세실극장, 70, 80년대 소극장 연극의 중심지로 연극사나 건축으로 우리나라 연극계를 대표했던 곳이다. 지난해 경영난으로 폐간되었다가 서울시의 문화재생 프로젝트로 재개관되어 다시 연극 관람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랜 벗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세실극장으로 향하는 내내 마음이 설레었다.은 연극계에서 인간의 존재를 고민했던 학자로 알려
오늘은 '비난'과 '비판'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한다. 비난은 상대방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 힐난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일부러 상대방을 부정적으로 보이게 하고 끌어내리려는 악의가 있다. 이와 달리, 비판은 상대의 오류를 명확히 지적하면서 그에 대한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경우이다.이중 가장 해서는 안 될 일이 '비난'이다. 비난은 사람들을 방어적으로 만들고 스스로를 거짓으로 정당화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는 토론 교육을 못 받은 경우가 많은 편이라 감정적으로 대응
K시 N구 H아파트 114동 입구에 떡하니 버티고 서서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주민들을 내려다보는 놈이 하나 있었다. 이름 하여 ‘슈퍼울투라 바이얼렛 감마나노 감지 CCTV’."요놈 봐라, 내가 뭔 잘못을 했길래 독수리눈으로 째려보는 거여?"Y씨(당 63세)는 장난삼아 주먹을 바투 쥐고 CCTV 안구 쪽을 꼬누며 쉐도우모션으로 몇 번 주먹질을 하였다. 그러자 ‘그놈’은 너 잘 만났다는 투로 혀를 날름거리며 Y씨의 온몸을 투명카메라로 찍어대는 것이었다. 필시 짧은 순간이었지만 여러 컷의 동영상
필자가 운영하는 는 50세 이상 중장년층과 함께 폭언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를 진행했다. 성격이 급하고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한 토론자가 법륜스님의 말씀을 인용했다. 가시에 찔리지 않으려면 결국 가시를 피하는 수밖에 없고, 밤송이 안에서 밤을 얻으려면 가시를 감당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목장갑이나 다른 도구를 사용하면 밤을 얻기 한결 수월해 진다는 말도 덧붙였다. 결국 스스로가 마음을 단련해야 한다는 말이다.옳은 말이다. 함께 일하고 싶은 상대가 화가 많은 사람이라
지난 1편에서 한국의 저출산 정책과 관련한 국가예산에 대해 언급했었다. 사상 최악의 현재 출산율 시점 앞에, 지난 13년 동안 사용된 예산은 약 150조 원이었다. 이 무력한 결과를 듣는 국민들의 마음에는 헉 소리가 날 것 같다. 대체 그 돈으로 무슨 일을 한 것일까?관련 업무 담당자들은 해당 업무들이 과연 의미가 있었는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여타 선진국보다 적은 비용을 쓴 거라는 변명은 없기 바란다. 현장도 이러저러한 노력이 의미 있었는지 자문해보면 좋겠다. 물론 다들 그때그때에 맞게 성실히 업무를 했을 것이다.그러나 지금 결과는
내가 한 말은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내가 자주 하는 말은 긍정적인 말인가? 부정적인 말인가? 듣기 좋은 말인가? 욕설인가? 표준어인가? 비속어 인가?오늘은 비속어인 '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욕설은 다른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고 모욕을 주는 저속한 말이다. 때로는 욕설을 사용해 다른 사람을 저주하기도 한다.요즘 주변에서 악플과 욕설로 얼룩진 SNS로 인해 마음의 상처와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본다. 욕설은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모두에게 문제가 된다.욕설사용으로 생기는 문제점은 한번 시작하면 쉽
【이모작뉴스 김수정 기자】 경기도 시흥시가 ‘경로당 프로그램 활활(활力·활氣)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운영하고 있는 ‘대대손손사랑방 프로그램’이 지역주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지난 4월부터 시작한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 11월 4일 목감푸르지오아파트경로당에서 ‘시니어 작은예술제’를 개최했다. 이번 예술제는 대대손손사랑방의 지역 재능기부자에게서 배운 세밀화 작품 전시와 하모니카 합주 등이 선보였다.예술제에 참가한 한 어르신은 “큰 행사는 아니
자동차는 가을길을 바람처럼 달리고 있었다. 누렇게 익은 벼논 사이 황토길에는 코스모스가 하늘거렸고 이따금 벼메뚜기 서넛 속날개를 부채살처럼 펴들고 가을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순간, 차창에 미세한 물체 하나가 언뜻 스치는가 싶더니 차바퀴 앞으로 굴러 떨어졌다. 낙하한 물체는 바로 가을빛으로 보호색을 띈 사마귀(버마재비) 한 마리였다. 그 물체가 운전자의 눈에 띈 것은 순전히 차량의 속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랑거차(螳螂拒車)’ 하마터면 운전자는 외마디 소리를 지를 뻔했다.“요놈 봐라. 감히 누구에
필자의 시어머니는 올해 97세이다. 연세에도 불구하고 당신께서는 가능하면 몸을 움직이신다. 약간의 포도를 따거나, 풀밭을 매거나 등등... 자식들은 어머니가 연로하시다보니, 그냥 좀 계시라는 말을 하는데 어머니는 그 말을 가장 듣기 싫어하신다. 살아있는 송장으로 살라는 거냐면서...97세의 어른이 이러한데 85세, 75세, 65세는 말할 것도 없겠다. 무엇보다 현재의 다수 시니어는 무척 건강하다. 그들은 다들 일을 하며 살고 싶어 한다. 물론 누군가 일을 준다면 말이다. 그저 일하고자 아우성이고, 혹여 지금 일을 하고 있는 시니어는
【이모작뉴스 송선희 기자】 송파구가 서울시 2020년 돌봄SOS센터 사업운영 자치구로 최종 선정됐다. 이로써 내년부터 송파구 전체 27개 동에 돌봄SOS센터가 설치된다.서울 송파구는 10월 18일 이같이 밝히면서, 고령화와 1인가구 증가 등으로 돌봄이 필요한 곳에 공공복지 책임을 다할 계획이다.돌봄SOS센터에는 사회복지직과 간호직공무원으로 구성된 전담인력 '돌봄매니저' 1~2명이 배치된다. 총 34명의 신규 돌봄매니저가 생긴다.돌봄매니저들은 ▲요양보호사, 활동보조인 등의 가사나 간병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는 '
"피고는 자연 생태 도토리를 채취하는 것이 불법인지 몰랐습니까?""알았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습니다.""알았다/몰랐다로 짧게 말하세요!""몰랐습니다.""도토리를 왜 채취했습니까?""채취하지 않았습니다. 떨어진 것을 몇 개 주웠을 뿐입니다. ""그 말이 그 말 아니예욧? ""아니지요! 채취라 하면 도토리나무에 달린 열매에 물리력을 가하여 잡아 딴것을 말하고요, 저는 그럴 힘은 없습니다.""그건 그렇다 치고, 도토리를 무엇에 쓰려고 주웠습니까? 혹 그것으로 도토리묵을 만들어 불법으로 납품할 의도 아니었나요?""존경하는 판사님! 도토리 서너
참으로 세상은 핑핑 돈다. 얼마 전에는 공간을 함께 쓰는 사무실, 공유오피스 개념이 도입되어 유행했다. 그런데 그 사이 IT 세상 속에서 또 다른 공유공간이 유행하니, 변화는 급격하다.사실 급격한 변화는 피부로 체감하기 어렵다. 그 내용을 ‘공부의 진화’를 통해 살짝 들여다보자. 과거 인터넷 세대들은 블로그를 통해 공부의 정보를 공유하며 학습했다. 지금은 동영상 기능을 응용하여 공스타그램(공부+인스타그램), 공팟(공부+팟캐스트), 공튜브(공부+유투브)를 통해서 학습한다. 그새 서로 공부한 것을 실시간으로 인증하
라일락 꽃잎이 날리던 날, 수학여행 버스가 교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떠나가는 뒷모습에는 아스라이 그리움 같은 것이 혹은 슬픔 같은 것이 매달려 있었다. 버스가 교문 앞을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를 건너 면소재지 삼거리를 돌아나가자 버스 옆구리에 새겨진 ‘청운(靑雲)관광’이라는 글자가 가물거렸다.남겨진 아이들은 남학생 두 명, 여학생 한 명, 이렇게 셋이었다. 한동안 어떤 미세한 소리도 들리지 않고 말(言)이 갑자기 길을 잃은 듯 교실에는 고요가 숨을 죽였다. 여자애는 복도 쪽 자기 자리에서 머리칼만 자꾸 앞쪽으로